중국 춘추전국시대 진시황은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사상을 채택해 중원을 통일했다. 전국시대 한()나라에서 태어난 한비자는 빈틈없는 법치()가 부국강병()의 길이라고 설파했다. 그는 또 법치의 방법으로 세()와 술()을 강조했다. 군주가 백성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과 권모술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제왕()통치의 강화 방안이라는 점에서 요즘 얘기하는 법치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의 법치는 민주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집권자의 자의적 지배는 있을 수 없고 오직 법에 의해서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통치원리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도 조선시대 경국대전()에서 법치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하다. 강압 통치수단으로 법을 동원한 군사 독재정권 시절은 물론이고 지금도 법의 정당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김원기 국회의장이 법치주의를 새해 화두()로 던졌다. 관용과 상생의 국회를 만들기 위해 벽돌 한 장부터 다시 쌓는 심정으로 올해를 시작하자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을 때는 표결을 하고 이에 승복하는 것이 법치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연말 파행국회의 책임을 야당에 돌린 것으로 읽힌다. 국회는 정부가 만든 법안을 통과시키는 곳이라는 통법부() 시절의 논리를 다시 듣는 것 같다.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사립학교법 처리에도 법적 하자는 없었다. 작년 말의 무더기 법안 처리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각을 얼마나 읽었느냐 하는 것이다. 법치라는 말로 단독국회의 변칙처리를 합리화 하려는 발상은 곤란하다. 새해에는 타협과 양보로 파국을 피해가는 법치의 이상을 현실에서 보고 싶다. 그 중심에 국회가 있어야 한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