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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비주류를 끌어안다

Posted March. 07, 2006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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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배우도 영화도 비주류의 승리였다. 제7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탄 크래시(폴 해기스 감독)나 감독상을 받은 브로크백 마운틴 모두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금기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 올해 시상식은 당초 브로크백 마운틴의 일방적인 잔치로 예상됐으나 크래시의 막판 역전으로 막을 내렸다.

크래시는 미국 사회의 트라우마(정신적 상처)라 할 수 있는 인종문제를 다뤘다. 로스앤젤레스를 무대로 미국 사회의 갈등을 섬세하게 포착했다는 평을 들었다. 흑백 갈등을 대립구도로 삼고 있지만 히스패닉계와 아랍계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좌절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8월 미국에서 개봉했지만 650만 달러라는 초저예산 인디영화여서 비평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박스 오피스에서는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시상식을 앞두고 DVD로 출시되면서 관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브로크백 마운틴을 넘어설지 모른다는 예측이 돌기 시작했다. 크래시를 선택한 데 대해 아카데미가 미국 보수층이 혐오스러워 하는 주제인 동성애 문제보다 누구나 명백한 정치 문제로 인식하는 데 동의하는 인종 문제를 선택한 것이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어떻든 2006년 아카데미는 근래 들어 가장 정치적이고 민감한 주제의 영화들, 여기에 메이저 스튜디오 제작이 아니라 모두 인디 성격이 강한 영화를 골랐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미국 인디 영화의 대부로 통하는 로버트 올트먼(81)에게 명예 오스카상까지 쥐어줌으로써 올해를 명실상부한 인디 영화의 해로 만들었다.

남녀 주연상 수상자들도 비주류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우주연상은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작가이면서 사형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실존인물 트루먼 카포트의 전기 영화 카포트에서 열연한 필립 시모어 호프먼에게 돌아갔다. 만년 조역을 벗고 첫 주연과 동시에 아카데미 첫 후보 지명이 수상으로 연결되는 영광을 얻었다. 국내에서도 9일 개봉할 예정인 앙코르(원제 Walk the Line)로 첫 여우주연상을 받은 리즈 위더스푼 역시 첫 후보 지명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금발이 너무해로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가벼운 영화 전문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이번 수상으로 스타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최고 여배우로 인정받게 됐다.

올해는 문제작들이 후보작으로 많이 올라서인지 시상식 분위기도 어느 해보다 차분했다. 시종일관 사회자나 수상자들의 정치적인 조크와 코멘트들이 이어지면서 미국 내 진보 집단으로 통하는 할리우드의 면모, 그들의 영화철학부터 요즘 미국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의 일단을 여실히 드러냈다.

영화의 기본은 스토리텔링이다. 즉 인간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그것을 통해 영화는 전 지구적 사람들과 연결된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이야기를 하는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오랫동안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뉴올리언스에서는 현재 6개의 영화가 촬영 중이다. 지역주민 600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다. 이것이야말로 피해 복구의 일환으로 영화도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영상예술과학협회장 시드 게니스)

예술은 단지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는 망치다.(각본상 수상자 보비 모레스코)

석유 거래를 둘러싼 국제 분쟁을 그린 시리아나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조지 클루니는 할리우드는 흑인들이 극장에서 백인과 같은 좌석에 앉지 못하던 시절인 1939년 흑인인 해티 맥대니얼에게 오스카상을 준 곳이다. 그런 그룹의 일원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콘스탄트 가드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레이철 와이즈도 불의에 맞서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언급해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행사 중간 특별 프로그램엔 대통령의 사람들 워터프런트 에린 브로코비치 필라델피아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 등 고전영화에서부터 현대물에 이르기까지 불의와 편견에 맞선 주인공들을 내세운 영화를 편집해 보여주기도 했다.

여배우들의 옷차림도 차분하면서도 우아한 스타일이 주류를 이뤘다. 검은색 드레스를 선택한 여배우들도 많았다. 아카데미상 집행위원회가 톰 행크스를 모델로 내세워 만든 8분짜리 비디오 내부 가이드: 수상 후보들이 알아야 할 것들을 미리 배포해서인지 대부분 수상 소감도 짧았다. 이 비디오는 시상대까지 걸어 나오며 너무 긴 포옹을 하지 말라, 짧게 말하라는 등의 요령을 소개했고 수상자들은 이를 충실히 따랐다. 외국어 영화상을 차지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영화 초치의 수상자는 수상 소감을 웹 사이트에서 확인하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허문명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