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우 권상우가 등장했던 한 화장품 광고의 삽입곡이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에 주로 쏟아진 질문은 연주 악기가 궁금해요라는 것. 동양적인 선율이 매력적인 이 노래는 중국 출신의 얼후() 연주자 카오 슈징의 풋 유어 핸즈 업이었다. 한국에 명주실 현의 해금(혜)이 있다면 중국엔 쇠줄 악기 얼후. 두 줄짜리 현악기, 동양적인 울림소리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중국의 전통 현악기 얼후는 늘 해금에 견주어졌다. 최근 국내 대중음악, CF, 드라마는 물론이고 일본 대중음악, 심지어 해외 뮤지션의 공연에서도 얼후 가락을 듣는 일이 잦아졌다.
얼후는 몰라도 소리는 안다
지난달 발매된 SBS 드라마 서동요 OST 음반에는 연주곡 애상과 국립합창단 출신 소프라노 가수 금선애가 부른 꽃빛에 얼후 연주가 메인으로 삽입됐다. 음반을 제작한 임재현(36) 프로듀서는 얼후는 해금보다 음색이 두껍고 묵직한 듯 튀지 않아 마치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가수 이선희는 올 여름 얼후를 중심으로 한 중국 12인조 여성 전통악기 연주그룹 여자 12악방()과 조인트 싱글 음반을 한국과 중국, 일본에 동시 발매할 계획이다. 이선희의 소속사인 후크엔터테인먼트 측은 국악적 색채를 띠었던 기존의 인연을 얼후를 중심으로 한-중-일 전체를 아우르는 느낌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얼후의 존재는 1999년 가수 이승환의 6집 수록곡 당부를 통해 알려졌다. 이후 이수영, 박정현 등의 가수를 비롯해 맥 바이날로그 같은 퓨전 밴드도 얼후를 주요 악기로 사용했다.
얼후의 인기는 한국뿐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2003년 여자 12악방의 앨범 뷰티풀 에너지가 150만장의 음반 판매를 기록했으며 여성 10인조 아이돌 그룹 모닝구무스메를 주축으로 결성된 그룹 사쿠라 조는 얼후 연주를 전반에 삽입한 사쿠라 만가이()를 발표해 오리콘 싱글차트 2위를 차지했다.
한편 다음달 19, 20일 내한 공연을 펼치는 미국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 밥 제임스는 얼후를 중심으로 한 중국 전통악기 연주그룹 엔젤스 오브 상하이와 함께 크로스오버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얼후의 근원지는 중국, 그러나 무대는 크로스오버
얼후의 새삼스런 인기 원인은 뭘까? 퓨전 밴드 맥의 멤버이자 얼후 연주자인 김상은 씨는 서양 음악에 적합한 구조를 꼽았다.
김 씨는 해금은 까랑까랑하고 떨림이 많은 악기라 개성이 강한 솔로 악기인 반면 얼후의 경우 튀지 않고 조화돼 퓨전 음악, 서양 음악 등에 어울려 대중음악 쪽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주 기법으로도 줄의 떨림이 많은 해금은 느린 음악에 어울리고 상대적으로 덜 떨리는 얼후는 비트가 있고 빠른 대중음악에 적합하다는 것.
일찌감치 크로스오버로 장르를 확대해온 얼후 연주자들의 활동상도 얼후 대중화에 큰 몫을 했다.
국악평론가 윤중강 씨는 10년 전부터 중국 출신 연주인들은 얼후를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공연을 했고, 얼후로 클래식, 팝 등 다양한 음악을 연주해 레퍼토리에 제약이 없음을 알렸다고 말했다.
윤씨는 해금의 경우도 얼후와 마찬가지로 한국을 뛰어넘는 악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연주자들 스스로 해외 무대에서 해금 연주를 자주 노출 시키고 서양 악기와도 지속적으로 협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범석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