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국무총리 후보자의 당적 이탈을 요구하는 한나라당의 속내가 복잡하다.
선거 중립 총리라는 명분을 관철해야 하지만 첫 여성 총리에 대한 여성계 등의 기대를 감안하면 무조건 반대만 하기도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26일 논평에서 역대 총리와 법무부 장관이 대부분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닌 중립적 인사였다면서 한 후보자의 당적 이탈을 거듭 촉구했다.
그는 나아가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경질까지 요구했다. 선거 중립 요구라는 명분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순인 셈이다.
실제로 1990년 이후 실시된 12번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총리가 집권 여당의 당적을 갖고 선거를 치른 예는 거의 없다.
1998년 지방선거 당시 김종필() 총리서리와 2000년 16대 총선 때 박태준() 총리가 자민련 소속이었던 게 예외다. 그러나 이는 대통령은 후보를 낸 민주당이, 총리는 연합세력인 자민련이 맡기로 한 DJP연합정권의 대선 공약에 따른 것이었다. 박 총리의 후임인 이한동() 총리도 자민련 총재 출신이었지만 2002년 지방선거 때는 탈당한 상태였다.
한나라당 이방호() 정책위의장은 이날 한 후보자의 당적 이탈은 야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를 거절한다면 우리도 총리에 대해 협조할 수 없다며 인사청문회 및 인준 표결 거부를 거듭 시사했다.
한나라당은 531지방선거에 대비한 전략 차원에서도 한 후보자의 당적 문제를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권이 한명숙 카드에 이어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워 지방선거에서 여풍()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명확한 만큼 이에 대해 정치적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내심이다.
여권의 여성 공세에는 최연희() 전 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을 부각시키려는 전략도 깔려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핵심 관계자는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대표의 진두지휘 아래 여성 후보 30% 이상 공천 등을 실천해 여심()을 파고들려 했으나 한명숙 카드로 어려움이 없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한 후보자의 당적 문제를 청문회 및 인준 표결 거부까지 몰고 가는 것은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당내에선 나온다.
당의 한 관계자는 한 후보자의 당적 이탈 요구를 두고 여권이 첫 여성 총리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이라며 역공으로 나올 수 있다. 이 경우 자칫 여성 표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일각에서는 당 지도부가 총리 후보로 거론되던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에 대해 한명숙 정도면 무난하다고 했다가 뒤늦게 한 후보자의 당적 문제를 제기하는 등 미숙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당적 이탈 요구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열린우리당이 연일 당적 이탈 요구는 책임정치, 정당정치에 비춰 과도한 요구라고 반발하는 데다 민주노동당이 24일 한나라당, 너무 좀스럽다는 논평을 내고 한나라당을 공격한 것도 한나라당의 고민을 더하게 하는 대목이다.
박성원 이정은 swpark@donga.com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