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중앙 벽면에 망점으로 이뤄진 거대한 달러화가 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그냥 망점이 아니라 산을 상징하는 작은 삼각형들이다. 굳이 숫자를 헤아리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림을 이루는 삼각형은 총 1만2000개, 바로 금강산의 1만2000봉을 상징한다.
진달래 도큐먼트 02: visual poetry 금강산전에 선보인 김경선의 뉴금강전도는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자본의 결합을 살짝 비틀어 바라본다.
지구상에서 가장 완고한 사회주의 체제가 지배하는 금강산에서 통하는 화폐가 자본주의 세계의 상징인 달러뿐이라는 모순적 현실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동아미술제가 작품 공모에서 전시기획 공모로 바뀐 뒤 첫 해 당선작을 선보이는 자리다. 젊은 시각예술가들로 구성된 진달래 동인 13명이 텍스트, 이미지, 그래픽,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고 노래한다는 주제로 전시를 구성했다.
전시장 바닥에는 너무 낮아 불편해 보이는 탁자 위에 13권의 책이 놓여 있다. 이것저것 제한이 많은 불편한 관광을 상징하는 불편한 탁자다. 9권의 책은 금강산에 다녀온 9명을, 백지로 만든 4권은 다녀오지 않은 작가들을 상징한다.
또 벽에는 13개의 보이지 않는 쌍안경들이 설치돼 있다. 막상 금강산에 가도 보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표현하는 오브제들이다.
아래층이 금강산이란 주제와 직접 연결되는 작품, 동인들이 출판물을 펴내는 과정과 결과물을 보여 준다면, 2층은 금강산 너머 세상으로 확장된 작가들의 관심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입구에 설치된 김수정의 소프트웨어 만화경은 관람객을 비롯한 주변의 이미지를 움직이는 패턴으로 바꾸어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전시는 사람의 형상과 한자로 인간군상을 표현한 김두섭의 천지인, 디지털 서법()을 담아낸 민병걸의 병풍, 12가지 스마일 캐릭터와 12개의 단어를 결합시킨 이기섭의 북극성 이야기, 근육질임에도 여성성이 느껴지는 몸을 담은 김재훈의 일러스트레이션 무명무상 등으로 이어진다. 최병일의 시각장치는 작은 공간 전체가 시계로 변하는 색다른 체험을 안겨준다. 기계 장치를 들여다보면 보는 이의 시선이 입력돼 시간을 알 수 있다.
미술평론가 최범 씨는 주제에 대한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접근이 이 전시의 미덕이라며 분단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경직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외치듯, 솔직하게 다룬 점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7월 1일 오후 1시 미술관 3층에서 작가와의 대화시간이 마련된다. 전시는 7월 12일까지. 관람료 1000원. 02-2020-2061
고미석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