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0월 27세의 삼화무역공사 사장 김기탁은 마른 오징어를 싣고 홍콩에 도착했다. 영국 상선회사 태고()양행 소속 화물선을 타고 인천을 떠난 지 닷새 만이었다. 그는 홍콩을 거점으로 수입품 도매상을 하던 자유공사에 오징어 2000t을 넘기고 5만 달러를 손에 쥐었다. 그와 함께 화물선을 타고 다녔던 한국 무역 1세대들은 오징어와 계란, 아연, 텅스텐 등을 홍콩에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였다. 변변한 공산품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패기 넘치는 청년 사업가들의 활약 덕분에 신생 독립국 한국은 1948년에 그나마 1420만 달러의 수출을 올렸다.
김기탁은 오징어와 텅스텐을 홍콩에 수출한 돈으로 페니실린과 양복감을 국내에 들여왔다. 홍콩에 다녀올 때마다 서울 시내 좋은 집 한 채 값이 떨어졌다. 1949년에는 삼화실업을 창립해 다양한 품목을 들고 수출 현장을 누볐다. 1967년에는 삼화제지도 세웠다.
1960년대 초반에는 독일로 엽연초()를 수출했고,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는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등 동남아시아 시장에 제지류를 수출했다.
삼화실업은 1980년대 초반 수출 실적 3000만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대기업 종합상사가 본격적으로 무역업에 뛰어들면서 입지가 좁아지자 무역 비중을 줄이고 내수용 제지사업에 집중했다.
1954년 한국무역협회 이사가 된 그는 지금까지 52년 동안 이 협회 이사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1971년부터 14년 동안은 무역협회 부회장도 역임했다. 이사와 부회장 모두 최장수 기록이다. 무역협회는 28일 창립 60주년 기념식 행사에서 그에게 공로패를 수여한다.
24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삼화제지 사옥에서 한국 무역사()의 산증인인 김기탁(85) 삼화제지 명예회장을 만났다. 1시간 반 동안의 인터뷰에서 무역과 무협에 대한 깊은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희범 무협 회장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국내 기업들은 세계 곳곳에서 다른 기업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전투의욕을 잃으면 군인이 아무리 많아도 지게 됩니다. 기업가들이 전투의욕에 불타 싸울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줘야 합니다. 새 회장께서도 그런 일에 앞장서 주셔야겠죠.
그는 기업인이 즐겁고 편안하게 사업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하는 사람은 일반인이 모르는 고생을 많이 합니다. 기업인도 저녁에 기분 좋게 술 한잔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아쉬운 점이 많아요.
무협에 대해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직원이 너무 많아요. 회장이 바뀔 때마다 사람을 데려옵니다. 역대 회장들도 무역업계를 위한 업무보다는 정부 눈에 드는 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제 달라져야겠죠.
그는 1970년부터 12년간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을 지냈고, 전국경제인연합회 창립 회원이기도 하다.
그는 국내 경제단체들의 활동에 미흡한 점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단체는 정부를 향해 바른말을 해야 합니다. 고 박두병 두산그룹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계실 때는 패기 있게 바른말을 자주 하셨는데 요즘은 눈치만 보고 인심 잃을 행동을 안 하려고 해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내 위치에서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면서도 이제 한국도 세계 속에 뛰어들어 경쟁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황진영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