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을 만나보면 요즘 장차관 값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다는 자조 섞인 말을 자주 듣는다. 정책결정은 물론 해당부처 공무원이나 산하기관 고위 임원 인사에서 해당부처 장관이나 차관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크게 떨어지고 청와대에 휘둘리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과거 한국은행을 재무부 남대문출장소라고 한 것에 빗대 정부중앙청사는 청와대 세종로출장소, 경제부처가 많이 몰려 있는 정부과천청사는 청와대 과천출장소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최근 전격 경질된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이 산하기관에 대한 청와대 관계자들의 인사 압력을 실명()까지 들어 폭로함으로써 정부 부처 및 산하기관 인사를 둘러싼 파행적 행태가 주목을 끌고 있다.
유명무실한 장관의 제청권 및 임명권
현행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에 따르면 정부투자기관장은 공모()와 사장추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주무부처 장관이 대통령에게 임명제청을 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별도의 관련법이 있는 기관은 주무부처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김대중 정부 때만 해도 진념 전윤철 경제부총리 등 일부 각료는 상당한 제청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는 실질적 제청권을 행사한 장관이 극히 드물다고 관련 인사들은 증언한다.
지난해 5월 당시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공모를 통해 뽑은 한국조폐공사 신임 사장 후보 2명을 청와대에 올렸다. 하지만 적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반려돼 재공모를 실시했다.
그 결과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해성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신임 사장으로 뽑혔다.
다음 달 3일로 신동규 행장의 임기가 끝나는 한국수출입은행의 후임 행장 인사도 임기만료가 3주일밖에 안 남았는데도 오리무중()이다.
주무장관인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14일부터 17일까지 여름휴가를 떠난다. 이와 관련해 한 금융권 인사는 어차피 청와대에서 알아서 결정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각 부처의 공무원 인사 역시 장차관이 소신 있게 하지 못하고 청와대 눈치를 봐야 한다는 공무원들의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장관의 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의 인사 개입이 과거보다 훨씬 심해졌다고 털어놓았다.
잇따르는 인사 물의
지난해 1월 출범한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초대 이사장 선임 때 홍역을 앓았다.
당시 이사장 후보추천위원회는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 등 후보 3명을 추천했으나 이들이 돌연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후보추천위원이었던 권영준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는 청와대 인사로부터 청탁전화를 받고 압력을 느꼈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었다.
결국 후보추천위는 다시 작업을 벌여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떨어진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을 사장으로 선임했다.
정부투자기관 감사 선임을 둘러싸고도 잇달아 물의를 빚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증권선물거래소 감사는 물론 상당수 투자기관의 감사 선임 때마다 여권()에 줄을 댄 사람들의 낙하산 인사 논란이 벌어졌고 대부분 보이지 않는 실세()들의 뜻대로 인사가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단국대 오열근(행정학) 교수는 노무현 정부 들어 코드에 따른 낙하산 인사가 과거 정부보다도 더 많은 것 같은데, 이는 시스템보다는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인사가 지나치게 좌우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산하기관장 인사에서 낙하산 인사는 있을 수 없다며 시스템에 따른 인사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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