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수도권 기업의 지방 이전을 촉진하기 위해 2004년부터 지원한 890억여 원의 보조금 가운데 55%에 이르는 490억여 원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쓰이는 등 이 사업이 사실상의 혈세() 낭비였던 사실이 5일 밝혀졌다.
정부는 특히 보조금 지원 규정을 바꿔 사업 시행 이전에 이미 지방 이전을 추진하고 있던 4개 기업에 266억여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본보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에게서 입수한 산업자원부의 기업지방이전 촉진 사업 추진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밝혀졌다. 지방 이전 기업에 대한 보조금 세부 명세가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조금 편법 지원=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는 2004년 5월부터 올해 6월까지 32차례에 걸쳐 891억1100만 원을 수도권 기업의 지방 이전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하지만 편법 지원 사례도 많고 사후 관리도 부실했다.
사업 시행(2004년 5월) 10년 전인 1995년 전북 완주군에 공장 부지를 산 뒤 공장을 지어 가동하고 있던 LS전선은 지난해 산자부에 기업 지방 이전 보조금을 신청해 150억 원을 지원받았다. 2002, 2003년 공장 부지를 사 놓았던 대상 유유 세운메디칼 등 3개 기업도 2억5600만100억 원의 보조금을 각각 받았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지방 이전을 위해 땅을 살 때만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당초 규정을 2004년 10월에 바꿔 이미 사 놓은 땅에 건물이나 시설을 지을 때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부실한 사후 관리=경기 시흥시에 있는 대창공업 등 14개 기업은 2005년에 충남 당진군으로 옮기겠다며 138억36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아갔으나 아직 착공도 하지 않고 있다.
우리ETI와 나노샤인텍은 일부 시설만 지방으로 옮긴 채 경기 안산시에서 사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VK는 18억8000만 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 놓고도 기업 이전을 하지 않다가 올해 7월 부도처리됐다.
심 의원은 억지 투자와 부실한 사후 관리로 수백억 원의 혈세가 기업의 지방 이전 촉진이라는 지원 취지에 맞지 않게 편법적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산 집행률도 저조=지방 이전을 원하는 기업이 많지 않아 예산 집행률도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2004년 지방 이전 기업 지원 보조금으로 300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으나 실제 지원된 금액은 44%인 135억 원에 불과했다. 2005년의 경우 배정된 예산 300억 원이 모두 집행됐으나 이 가운데 266억4400만 원은 LS전선 등 이전부터 지방으로 이전하고 있던 4개 기업에 지원된 것이어서 본래 취지대로 지원된 금액은 33억여 원이었다.
특히 올해 상반기(16월) 집행 실적은 배정된 연간 예산 238억 원 가운데 8억3200만 원이 1개 기업에 지원된 것이 전부. 그런데도 정부는 이 사업의 내년 예산으로 300억 원을 책정해 놓고 있다.
수도권 기업의 지방 이전 지원 사업은 특히 기업을 이전받는 해당 지자체도 정부 보조금 수준이나 그 이상의 금액을 기업에 지원하는 매칭 펀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중앙정부의 결정이 잘못되면 국세와 지방세 이중 낭비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상록 myzod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