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다. 미국의 세계적인 양궁 제조업체 호이트 사는 최고 품질의 활을 자국 선수들에게만 제공했다. 한국남자양궁대표팀 선수들도 이 활을 구입하려 했으나 팔지 않겠다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여자 선수들은 일본의 야마하(현재는 양궁 사업 철수)사가 만든 활을 사용했다.
여자는 개인전(김경욱)과 단체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땄다. 그러나 남자는 단체전 은메달에 그쳤다. 반면 미국은 남자 개인전(저스틴 후시)과 단체전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가져갔다.
그해 겨울 대한양궁협회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활의 자주화를 선언한 것이다. 양궁협회는 1997년부터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국내 대회에서 외제 활을 사용할 수 없다는 지침을 내렸다.
처음엔 반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한국의 두 개뿐인 활 제조업체 삼익스포츠와 윈앤윈은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해 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처음으로 한국 선수 모두 메이드 인 코리아가 새겨진 활을 들고 경기에 나섰다. 여자는 개인전(윤미진)과 단체전을 석권했고, 남자는 단체전 금메달을 땄다. 4년 뒤 열린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한국 양궁은 4종목 중 3개의 금메달(여자 2개, 남자 1개)을 휩쓸었다.
이번 도하 아시아경기에서도 한국은 국산 활로 승승장구했다. 11일 여자 개인전의 박성현, 12일 남자 개인전의 임동현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2일 루세일 양궁장에서 만난 많은 외국 선수는 한국제 활을 사용하고 있었다. 얼핏 봐도 반이 넘었다. 인도의 아바라이 와자 감독은 우리 팀 8명의 선수 중 5명이 한국 활을 쓴다며 조만간 한 업체에서 신제품이 출시된다고 해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고 장비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선수들이 쓰는 활은 대개 한 달 정도 지나면 탄력이 떨어진다. 그때마다 두 업체는 수리해 주거나 교환해 준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한국 선수들은 철저한 서비스를 받았다.
서거원 대한양궁협회 전무는 세계의 톱 랭커 90% 이상이 한국 활을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10년 전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자랑스럽다. 선수도, 활도 모두 메이드 인 코리아가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