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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 우울증 걸리지 말고 정치 잘 견제해야

국민들 우울증 걸리지 말고 정치 잘 견제해야

Posted December. 25, 2006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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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잠재력을 갖고 있어요. 다만 이런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려면 국민이 힘을 합쳐 정치를 견제해야 합니다. 국민이 우울증에 걸리지 말고 정치가 잘 따라오도록 이끌어야 해요.

경제계 원로인 김준성(86) 이수그룹 명예회장은 19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이수그룹 본사 8층 명예회장실에서 가진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의 현실을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경제의 잠재력과 국민의 역량을 믿는다며 지금은 국민이 정치를 바로잡아 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 명예회장은 다채로운 경력을 갖고 있다. 한국의 고도성장기에 제일은행장, 외환은행장, 한국산업은행 총재, 한국은행 총재를 거쳐 경제부총리를 지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삼성전자 대우 이수그룹 회장을 거쳐 현재 이수그룹 명예회장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 보니 국민의 80%가 우울증에 걸린 상태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우울증에 걸릴 이유가 없어요. 한국 경제는 선천적으로 잠재력이 있습니다. 지지율이 이렇게까지 떨어진 정권에서도 3000억 달러의 수출을 했습니다.

그는 일시적인 정치혼란이나 사회혼란 때문에 용기를 잃지는 말아야 한다면서도 정치 견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아직 가망이 있습니다. 가망이 없을 때 우울증에 빠져야지, 가망이 있는데 왜 우울증에 걸립니까. 그렇다고 안심해선 안 됩니다. 국민이 힘을 합쳐 정치를 견제해야 합니다. 정치가 잘 따라올 수밖에 없도록 국민이 잘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수출이나 경제성장률에는 착시() 현상도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간과하고 잘 안 되는 것을 잘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가 지적한 착시현상을 불러온 구조적 문제는 뭘까.

국가 경제에서 수출에 의존하는 비중이 너무 높아요. 수출에만 의존하니 내수 경제가 부실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수출도 상위 몇 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대기업 중심인 데다 품목별로도 몇 가지에 편중돼 있습니다. 이런 약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수출이 잘되니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지요.

글로벌 경쟁을 외면하는 정치권과 노조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중국, 인도 등이 한국을 쫓아오는 속도가 무섭습니다. 이러다가는 한국이 선진국과 후발국가 사이에 끼여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노사 관계는 정말 문제가 많아요. 한국처럼 노사 분규가 많은 나라가 없지요. 단순히 임금상승에 따른 기업경영 악화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 전체에 주는 부정적 영향이 너무 큽니다. 정치권은 이를 바꿔 나가야 하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환율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기업이 가만히 앉아서 환율 때문에 입는 손해가 510%나 됩니다. 여건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요. 환율은 결국 돈의 가치입니다. 미국은 재정 적자가 많기 때문에 미국 달러에 비해 원화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일본 엔화에 비해 우리 원화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가 환율 정책을 잘못 편 결과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돈 가치가 떨어져야 하는데 우리 돈의 가치는 올라가고 있습니다. 왜 우리 돈의 가치가 높아집니까.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독일, 프랑스의 3배나 됩니다. 해외투자를 많이 했어야 하는데 정부가 그런 여건을 조성하지 못했어요.

기업인들의 기업가 정신 부족은 문제가 없습니까.

요즘 기업들은 해외에 나가서 투자하고 개발하는 기업가 정신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과거 기업인들은 전 세계를 상대로 정말 열심히 일하고 다녔지요. 다만 국내 시설에 대한 투자 여건도 좋지 않은 실정인데 해외 투자가 쉽지 않지요. 돈을 쌓아 두고 있으면서 정부 돈 빌린다는 것이 쉽겠습니까.

반()기업정서가 강한 현실에 대해서는 기업인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반기업 정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금방 바꾸기 어렵지요. 미국과 일본에 반기업 정서가 적은 것은 그만큼 기업이 사회 공헌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투명 경영이 우선시돼야 합니다. 근로자에게 임금 주고, 주주에게 배당 주고, 그러고 남는 돈은 사회에 환원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때 반기업 정서가 사라지겠지요.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해선 민간 기관투자가 육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재벌이 3대까지는 가더라도 4대, 5대를 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배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선진국처럼 자본과 경영이 분리된다는 뜻인데, 이렇게 되려면 기관투자가 비중이 3040%는 돼야 합니다. 한국은 외국인 주주 비중이 40%가 넘고 개인 비중이 30% 정도입니다. 기관투자가는 18%밖에 되지 않습니다. 현 정부가 연금, 기금을 동원해 기관 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는 위험한 일입니다. 정부가 민간기업을 지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민간 기관투자가를 육성해서 기업지배구조를 바꿔 나가야 합니다.

시장원리에 맞는 부동산 대책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금리가 낮고 요구불 예금이 많으니까 부동산 투자 의욕이 강해진다고 분석할 수 있지요.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가 집을 짓지 못하게 해 놓고 집값을 낮추려는 것은 억지입니다. 국민소득 1만5000달러에 수출 3000억 달러라면 부자 나라입니다. 부자 나라라면 고급 주택 수요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시장 수요, 즉 실수요입니다. 실수요는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하는데, 세금으로 주택 가격을 잡으려고 하니까 부작용이 생기는 겁니다.

요즘은 20대 90%가 백수라고 해서 이구백이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하자 김 명예회장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경제 구조가 대기업 중심이다 보니 일자리가 많지 않지요. 고용은 중소기업이 해결해 줘야 합니다. 중소기업을 어떻게 육성하느냐는 대기업에 책임이 큽니다.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과감히 기술과 자금을 지원하고, 정부도 중소기업 육성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수출 중소기업을 늘려야 일자리가 늘어납니다. 지식서비스산업과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고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예비후보들은 모두 경제 살리기를 외치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리더십을 물어보았다.

개인적으로 대선에 관심이 없어요.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경제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다만 누가 되더라도 경제 정책 수립에 집중하는 정치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으면 합니다. 결국 국민이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하겠지요. 정치가 경제를 한꺼번에 망가뜨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경제가 더 잘되도록 하느냐, 아니면 잘 안 되도록 하느냐는 정치의 책임입니다. 다음 정권이 한국 경제의 잠재력을 믿고 이를 잘 발휘하도록 노력한다면 한국 경제의 앞날은 밝습니다.

금융계 경제부처 산업계 등을 두루 거친 경제계 원로인 그는 최근 몇 년간 여러 권의 소설을 내놓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매주 한두 차례씩 골프장을 찾을 만큼 건강도 좋다.

그는 그동안 욕망의 방(1998), 비둘기의 역설(2000) 복제인간(2005) 등 소설을 많이 펴냈지만 앞으로 경제 관련 서적을 쓰겠다고 했다.

나이를 먹으니까 내가 한국에 뭘 공헌해야 하는가를 자꾸 생각하게 되요. 가만 생각해 보니 결국 경제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증권시장과 환율을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가에 대해 책을 쓰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자료를 모으고 있지요.



주성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