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랬다. 한 해 동안 수없이 상처받고, 나도 모르는 새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제 그 상처들을 치유하고 새로운 시간을 맞을 준비를 할 때. 치유의 영화를 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건 어떨까.
사랑해 말순씨는 1979년을 배경으로 화장품 외판원인 엄마(문소리), 여동생과 함께 사는 중학교 1학년 광호(이재응)의 성장 드라마다. 엄마는 그것도 몰라? 나가란 말야가 엄마에게 하는 말의 대부분인 사춘기 소년 광호와 엄마, 그리고 그 주변의 얘기가, 그때는 구질구질했을지 몰라도 지금 보면 아련하게만 보이는 다정한 풍경 속에 펼쳐진다.
영화 마지막 부분, 광호는 혼자 방안에 누워 죽은 엄마를 생각하며 운다. 광호의 꿈 속에 모든 등장인물이 모여 한바탕 춤을 춘 뒤 영화는 광호의 성장을 의미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지나간 시절과 어머니. 조용히 뒤돌아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
9월 개봉했던 라디오 스타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왕년의 가수왕 최곤(박중훈)과 매니저(안성기)의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 형, 담배! 형, 불! 하던 거만한 스타 최곤은 매니저가 떠나간 뒤, 라디오 방송을 하며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별로 빛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옆에서 비춰주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임을 깨닫고.
가족의 탄생은 많은 칭찬을 받았지만 정작 본 사람은 별로 없는 영화다. 촌스럽게 가족애를 강조하지 않으면서 가장 가족 같지 않은 사람들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준다. 엄마를 미워하던 선경(공효진)은 엄마의 죽음 뒤 엄마와 찍은 사진을 붙잡고 서럽게 운다. 방안의 모든 물건이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선경의 주변으로 두둥실 떠오른다. 마지막 부분, 축제처럼 화면 가득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등장인물들은, 아름답게 하나가 된다.
한국영상응용연구소가 작년 11월부터 1년간의 개봉작을 대상으로 뽑은 올해의 치유 영화들이다. 이 연구소는 영화로 심리치료를 하는 시네마세러피 전문 기관. 세 영화에서 자극적인 사건은 하나도 없다. 시종일관 잔잔하다.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어 대박은 나지 않은 영화들이다. 그러나 따뜻하다. 상처를 보듬어 주고, 그래도 사랑하며 열심히 살아야지 하며 마음을 위로해 준다.
몇 시간 안 남았다. 올해가 가기 전에 DVD로 나온 영화들을 보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자. 한바탕 눈물을 쏟아도 좋다. 상처는 사라지고, 새로운 시간은 다가온다.
채지영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