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통하지 않으면 기업도 하기 어렵다는 푸념이 많다. 경제 권부()의 세도()가 워낙 등등한 탓이다. 그 중에서도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관 공직자들은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할 정도로 기업인들에겐 하느님이다. 기업인들이 이들 앞에 줄을 서거나 방탄() 모임을 만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쁜 기업인들이 대학원 최고위과정이나 각종 사교모임에 들어가 인맥 넓히기에 안간힘을 쓰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신용금고 인수를 위한 불법로비 혐의로 구속된 김흥주 삼주산업(전 그레이스백화점) 회장은 방탄 모임을 직접 만든 경우다. 원래는 고아원 양로원 봉사활동을 하자는 뜻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형제들의 모임으로 이름 붙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45명의 회원들은 서로 형님 아우로 부르기 시작했고, 어느 사이에 형제 모임이란 약칭을 쓰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 씨의 로비창구와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 모임의 회원 또는 준회원 면면은 화려했다. 김 씨의 신용금고 인수 시도룰 도와준 혐의로 긴급체포된 금융감독원의 현직 부원장과 전 광주지원장, 2001년 사건 초기에 내사() 무마를 꾀하다 좌천된 K 검사장, 전 대통령비서실장 H 씨, 전 국세청장 L 씨가 회원 또는 옵서버로 끼어있다. 검찰간부 출신 전직 장관, 방송사 출신 정치인, 중견 언론인, 유명 연예인도 있다. 회원 중 신용금고 인수 시도에 관여했던 감사원 출신 K 씨는 의문의 자살을 했다.
인맥만 훑어봐도 경제 권력기관의 특권과 반칙을 짐작할 수 있다. 며칠 전 대통령은 공직자들의 우수성을 칭찬했지만 경제 부처엔 불량 공직자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2001년부터 이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이 아직도 윤곽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김씨를 도와준 인사들이 각계에 망라돼있기 때문 아닐까. 따라서 이번 사건의 진상은 아마도 형제 모임의 얼굴들 속에 있을 것 같다.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