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정계 복귀 후 통합야당인 민주당을 쪼개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기에 앞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며칠 밤을 고심했다. 흰 종이의 한쪽에 신당 창당의 유리한 점, 다른 쪽에 불리한 점을 적어나간 결과 유리하다는 논거가 더 많았다. 미친 짓이라는 비판여론이 거셌지만 DJ는 신당 창당을 결행했고, 집토끼를 잡은 뒤 산토끼를 잡겠다는 DJP 연합전략으로 199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 분당에 반대해 결별했다가 대선직전 DJ 진영에 합류한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 멤버다. 그러나 그 자신도 DJ가 창당한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17대 총선에서 탄핵풍에 힘입어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 노 대통령이 지금은 여당의 분당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다. 측근을 총동원해 탈당파 의원 설득에 나서는가 하면 사석에서는 (내가 한마디 하니) 고건이 무너지는 것 봤지요라며 대통령의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당내에선 퇴임 후 정치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래도 노무현표로는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에 김한길 강봉균 의원 등 중도 실용파 의원 2030명은 내주 탈당을 결행할 예정이다. 현실적으로도 신당 창당은 남는 장사다. 교섭단체(20명)만 넘으면 국고보조금 절반을 열린우리당 한나라당과 균등하게 배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분기 국고보조금 지급일(15일) 안에 신당이 결성되면 올해 지급분 569억4000만원 중 95억원을, 5월 15일 이전에 만들어지면 72억원을 일단 챙길 수 있다.
신당이 창당되면 1963년 정당법이 만들어진 뒤 116번째 정당이다. 열린우리당도 14일 전당대회에서 통합신당을 창당하기로 결의하면 3년 3개월 만에 문을 닫는다. 우리 정당의 평균수명 3년2개월 보다 조금 길게 산 셈이다. 이처럼 권력을 노린 배신과 훼절만 판치니 자라나는 세대가 무엇을 보고 배울까. 한국경제는 땅 투기꾼이, 정치는 당 투기꾼이 망친다는 말이 가슴에 아프게 다가온다.
이 동 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