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마케팅전략실에서 일하는 양동철(29) 씨는 휴대전화 번호를 10개 그룹으로 나눠 저장하고 있다.
이 중 무려 6개 그룹이 대학시절 인턴 활동을 하며 만난 사람들이다.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학창시절 신세기통신 i모니터(2001년), SK텔레콤 보이저(2004년), 현대기아자동차 인턴(2003년) 등으로 활동했다.
양 씨가 인턴 활동에 열중한 것은 업무경험도 쌓고 인간관계도 넓히고 싶었기 때문. 하지만 그는 지금 내게 인턴 인맥은 그 이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2005년 SK텔레콤에 입사할 때부터 인턴 인맥 덕을 톡톡히 봤다. 양 씨가 입사원서를 내기 전 찾아간 SK텔레콤의 한 선배는 양 씨의 학교나 고향 선배가 아니라 신세기통신 i모니터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인턴 선배였다.
선배는 정보기술(IT) 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를 파악하고 면접에 들어가라. SK텔레콤은 모범생보다 창의적 인재를 원한다 등의 조언을 해줬다. 양 씨는 선배의 조언에 따라 자기소개서를 만들어 제출했고 남들보다 한결 수월하게 바늘구멍을 통과했다.
20대 사이에서 인턴 인맥이 각광받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턴십을 활용해 직원을 채용하는 기업이 늘고 상당수 대학생이 이 제도에 참여하면서 인턴 인맥이 자연스럽게 20대 인맥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과거 학연과 지연으로 대표됐던 인맥의 질적 변화가 시작됐다. 실용성을 강조하고 자기계발 욕구가 강한 20대의 성향이 투영되면서 인턴 인맥이 급부상하고 있다.
경쟁자 아닌 협력-수평적 네트워크
지난해 5월 양 씨에게 긴급 과제가 떨어졌다. 지식경영이 잘되는 기업현황을 뽑고 기업별 특징을 분석하라는 것.
입사 2년차에겐 버거운 주제였지만 양 씨는 휴대전화를 열어 몇 통의 전화를 돌리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먼저 현대정유 전략기획팀에 근무하는 동기에게 협조를 구했다. 동기는 선뜻 자신의 회사와 관련된 자료를 보내 줬고 양 씨는 이런 동기들의 도움으로 이틀 만에 보고서를 완성했다.
지난해 1월 이동통신과 연계한 금융상품을 개발한다는 방침이 정해졌을 때도 양 씨는 금융권에 취업한 동기의 도움을 받아 시장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양 씨는 또 수시로 광고계에 근무하는 동기를 통해 자사 광고의 반응을 확인하고 있다.
양 씨가 이렇게 도움을 받는 동기들은 다름 아닌 SK텔레콤 보이저로 함께 활동했던 인턴 동기들이다.
보이저 동기 20명 가운데 양 씨를 포함해 3명은 이동통신업체에 취업했고 나머지 동기는 일반 대기업과 광고회사, 금융권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다.
양 씨는 인턴 인맥은 대학생 때 순수하게 쌓은 친분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필요가 더해진 관계라 그런지 어떤 인맥보다 공고하다고 말했다.
밀고 끌고-수직적 네트워크
인턴 네트워크는 동기끼리의 인맥에 머물지 않는다. 서로 진출한 분야나 관심사에 따라 선후배 인턴이 또 다른 네트워크를 만드는 등 파생 조직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특징이 있다.
신한은행 대학생 홍보대사 1기 출신으로 이 은행 구리중앙지점에 근무하는 한석환(28) 씨는 홍보대사 14기 가운데 금융권에 취업한 20여 명과 매달 한 번꼴로 별도의 모임을 갖는다.
한 씨는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다 보니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가 많은 데다 앞으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서로 밀어주고 끌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회원들이 모임에 거의 빠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10, 20년 뒤 신한은행 홍보대사 출신 입사자가 계속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회사 내에 별도 모임이 만들어질 것이라며 인턴 인맥이 자연스럽게 직장 내 새로운 인적 네트워크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성균관대 차동옥(경영학부) 교수는 인턴 인맥은 본인이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란 점에서 학연, 지연과 같은 수동적 인맥과는 구별된다며 경쟁력을 키우는 게 중요한 요즘 검증된 인맥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턴 네트워크는 점점 더 중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상준 홍수영 alwaysj@donga.com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