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고위직 인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심에 따라 좌우된다. 특히 북한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보직 발탁은 김 위원장의 눈에 드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는 게 고위직 출신 탈북자들이나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김 위원장 뜻대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는 북한의 인사에도 나름의 원칙은 있다.
제1원칙은 혁명원로에 대한 존중. 김 위원장 스스로 1995년 담화를 발표해 혁명선배를 존대하는 것은 혁명가들이 숭고한 도덕의리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평균 연령을 보면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가 74세, 당 정치국이 80세, 당 비서국이 77세에 이른다.
자연사 하거나 심각한 질병으로 업무 수행이 어려울 때까지 일하기 때문에 자르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라는 원칙이 뿌리를 내렸다.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점도 주요한 인사원칙.
이 때문에 충성심을 의심할 만한 행동에 대해서는 잔혹하게 보복한다. 대학 동창생들로 김 위원장의 후계자 이미지 구축과 우상화에 기여했던 홍순호, 김동이, 이동호 등은 측근으로 부상한 뒤 김 위원장의 과거사 왜곡 등을 안줏거리로 누설했다가 1980년대 처형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됐다.
1976년 국가 부주석이던 김동규도 당시 김일성 주석과 인사권을 공유하던 김 위원장에 대해 간부정책의 난맥상과 후계체제의 조기 가시화 등을 비판했다가 숙청당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최대 수백만 명까지 숨진 것으로 알려진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김 위원장의 인사원칙에도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2001년 1월 당 중앙위원회 책임 일군들과의 담화에서 적지 않은 간부들이 당의 신임에 충성으로 보답하겠다는 말을 잘하는데 보답은 말이 아니라 실력을 가지고 실천으로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실력은 충실성과 배합해야 할 요소가 아니라 그 자체가 곧 충실성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기류 속에서 북한에서는 선군정치의 기반인 당과 군의 권력기관 엘리트들은 죽을 때까지 자리를 유지하는 반면, 내각을 비롯한 경제 대남 분야에서는 빠른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하태원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