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도쿄에서 있은 한일 문화교류 행사 때 일본 경제계 인사들을 만났다. 저녁 식사시간 내내 1년 전에 출범한 노무현 정권이 화제에 올랐으나 그들은 구체적인 반응은 피했다. 마치 외교관들이 주재국 정세에 대해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 일본인들이 속마음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은 국화와 칼 등 일본을 분석한 책에 거의 예외 없이 언급되지만 현장에서 목격한 그들의 인내심이 놀라웠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5월 22일 일본은 선진국 중 가장 후진적인 취재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말한데 대해 일본신문협회가 공식 반응을 보였다. 일본의 139개 신문 방송 통신사를 회원사로 둔 이 협회는 19일 국내 신문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일본 기자들이 기자클럽(기자실)만을 통해 취재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며 불쾌감을 표출했다. 이 협회는 또 한국 정부의 기자실 폐쇄 조치를 비판했고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독특하다고 했다. 일본으로선 강한 항의이자 역공이다.
일본에는 1890년대에 기자실이 생겼다. 관료들은 신문은 정부가 발표하는 대로만 쓰라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기자들이 관료들을 회견장으로 끌어내고 답변을 듣기 위해 만든 게 기자클럽이다. 일본의 관련법에는 기자실은 국가의 업무 수행을 위해 설치해야 하는 시설이라고 명시돼 있다. 일본신문협회는 기자실은 정보공개에 소극적인 공공기관을 압박하는 곳이라고 규정한다. 일본의 기자실은 국민을 대신해 정부에 대한 감시활동을 펴는 공간이자 제도로 자리를 잡았다.
김 처장의 발언은 일본 언론계에서 네거티브하게 화제가 됐다. 그는 결국 세금 써가며 한국 정부의 품위와 수준을 떨어뜨린 셈이다. 그는 미국으로 화살을 돌려 미국의 프레스룸은 기자실이 아니라는 독특한 해석을 내놓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딴판이다. 정부기관에 설치된 미국의 프레스룸에도 우리처럼 기사송고 공간이 마련돼 있다. 대통령에게 아무리 듣기 좋은 소리라도 외국을 폄훼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말하는 것은 국정홍보에 역행하는 짓이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