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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제에 쏙 빠진 얼굴 그래 이건 다이어트야

항암제에 쏙 빠진 얼굴 그래 이건 다이어트야

Posted July. 23, 200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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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일이었다. 고교 2학년 가을 수학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부터 몸이 이상했다. 오른쪽 배가 아프기 시작했고 오른쪽 어깨도 아팠다. 공부는커녕 누워서 잠을 자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1주일을 보낸 뒤 동네 병원에 갔더니 담당 의사는 뭔가 이상하다며 피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간수치가 400으로 정상에 비해 10배 이상 높게 나왔다.

큰 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를 받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대학입시가 더 중요했던 나는 병원 침대에 앉아 수학 문제를 풀었다.

컴퓨터단층(CT),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과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 간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믿기지 않았다. 집에는 각종 운동복과 운동화가 가득할 정도로 나는 운동을 좋아했다. 엄마는 나에게 너 그러다가 체육대학에 가겠다며 말하곤 하셨다. 술, 담배도 일절 하지 않았다. 이렇게 건강하게 사는 내가 암에 걸리다니.

수술은 빠르게 진행됐다. 마취에서 깨어난 몸에는 이차함수 그래프 같은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종이를 철하는 데나 사용하는 줄 알았던 스테이플러가 수술 부위에 촘촘히 박혀 있었다.

수술로만 끝나지 않았다. 수술에서 회복할 때가 되자 항암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항암제는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학교도 갈 수 없었다. 학업을 따라갈 수 없으니 대학 진학도 당분간 포기해야 했다.

담당 의사는 이 약을 맞으면 90%가 구토와 같은 부작용이 생긴다. 그렇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부작용의 90%는 줄일 수 있다고 용기를 줬다. 암병동에서 7인실 병실에 입원해 있었는데 나머지 6명의 암 환자가 구토를 하는 동안에도 나는 정신은 몸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구토를 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냈다.

항암제의 고통은 이겨냈지만 외모의 변화는 어쩔 수 없었다. 통통했던 나는 몸무게가 10kg이나 빠지고 바지 사이즈가 6인치나 줄었다. 거울에 해쓱해진 나를 비춰보며 나름대로 좋은 다이어트였다고 위로했다. 밥 냄새 맡는 것조차 싫었다.

지난해 힘겨웠던 6번의 항암제 치료가 끝이 났다. 치료가 끝나는 날 나는 세상에 나보다 더 기쁜 사람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집에서 6개월 정도 쉰 후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뒤쳐진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그야말로 미친 듯이 공부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두 달쯤 됐을까. 다리에 마취주사를 맞은 것처럼 감각이 없었다. 엄마가 옆에서 잡아 줘야 한 걸음 간신히 뗄 수 있었다.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 내 힘으로 서서 소변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두려운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간암이 등 쪽으로 전이가 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도대체 왜 또? 병원에 입원하면서 지난번 수술과 항암 치료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암이 재발해서 감사한 20가지 이유를 종이에 적으며 이 난관을 이겨내기로 다짐했다. 지난번 수술을 받으면서 긍정적인 생각에 따라 회복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비록 수술을 받는 동안 몸에는 100개가 넘는 스테이플러가 박혔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내가 여름에 갑옷과 같은 보조기를 차고 있어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경험자라는 생각에 버틸 수 있었다.

재발 후 13번의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단 한 번도 토하지 않고 잘 견뎠다. 먹기 싫은 밥을 먹어 가며 내 키에 맞는 몸무게를 회복했다. 장기 환자는 주사를 너무 많이 맞아 혈관이 안 보인다고 하는데 나는 꾸준한 운동을 통해 혈관을 키운 덕에 주사를 맞는 데 별 무리가 없었다.

지금은 20번째 항암제를 맞고 있다. 이번 항암제 치료가 끝나면 다시 대입 공부를 시작하고 운동도 계속할 것이다. 스무 살도 안된 나이에 찾아온 암이지만 이 때문에 나의 인생 계획을 절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씩씩하게 웃는다.



이진한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