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사는 주부 임영주(30•여) 씨는 은행 자동화기기(CD, ATM)를 이용할 때마다 뒤에서 누군가가 엿볼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이달 초 광주은행이 도입한 안전입력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걱정이 사라졌다. 임 씨는 늦은 시간 돈을 찾을 때면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는데 지금은 한결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자동화기기 앞에서 비밀번호를 엿본 후 카드를 위조하거나 훔쳐 돈을 빼 가는 범죄가 잇따르자 은행들이 고객 정보에 대한 보안 능력을 강화한 새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광주은행과 전북은행은 새로운 시스템을 설치했고 신한은행도 자동화기기 보안 대책을 올해 안에 마련할 계획이다. 광주은행 자동화기기를 이용하는 고객이 안전입력 방식을 선택하면 터치스크린 번호판에 0부터 9까지의 숫자가 무작위로 나타난다. 비밀번호 첫 번째 자리에 해당하는 숫자를 누르면 다음 자리를 누를 수 있도록 다시 숫자가 무작위로 번호판에 나온다. 번호를 누르는 위치가 매번 바뀌는 데다 손을 떼면 숫자가 사라지기 때문에 안전하게 비밀번호를 입력할 수 있다.
이 기술을 개발한 신비테크 박승배 사장은 다른 사람이 어깨너머로 엿보더라도 번호판 배열을 순간적으로 외울 수 없어 비밀번호가 유출될 확률이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광주은행은 자동화기기 700여 대 중 600여 대에 이 프로그램을 설치했으며 나머지 기기도 9월 초까지 같은 방식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전북은행은 이달부터 자동화기기 200여 대에 VIS 안전모드를 도입했다.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원래 숫자 대신 화면에서 임의로 생성된 대응 숫자를 누르는 방식인데 기존 방식과 병행이 가능하다.
외환은행은 비밀번호 번호판의 숫자를 배열할 때 0부터 9까지 나열하는 방식과 거꾸로 배치하는 방식을 혼용해 엿보기를 막고 있다.
은행들은 그동안 자동화기기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성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외환은행은 2003년에 비밀번호 입력 시 번호판의 숫자를 무작위로 나타나게 했지만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하는 고객이 많아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선보인 기술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고객들이 입력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편의성이 높아졌고 보안 효과도 강화됐다.
금융계는 새 시스템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이 좋을 경우 은행권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장원재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