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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과 동거는 하되 결혼은 하지마세요

Posted December. 25, 20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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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과 동거는 하되 결혼은 하지 마세요.

최근 출간된 서양정치사상사 연구서 2권에 이름을 올린 강정인(53)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런 말로 우리 사회가 이념에 지나치게 심취하는 것을 경계했다.

강 교수는 서양정치사상사 개론서로는 처음으로 국내 학자들이 편찬한 서양근대정치사상사(책사상)의 기획 및 편집을 맡았다. 레오 스트라우스, 한나 아렌트와 함께 미국 정치사상학계 거목으로 불리는 셸던 월린(85)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의 대표작 정치와 비전(후마니타스)의 공동 번역도 주도했다.

서양정치사상사 개론서로 국내에서 시판 중인 대표적인 책은 세바인과 솔슨의 정치사상사(한길사전2권), 스트라우스와 크립시의 서양정치철학사(인간사랑전3권)입니다. 전자는 1930년대 나온 책을 50년대 수정 보완한 것이고 후자는 2030년 전 논문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모두 번역서입니다.

한국에서 서구적 근대화가 시작된 지 130여 년이 지났지만 그 사상을 자체적으로 소화해 낸 저서가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서양근대정치사상사가 기획됐다. 19992003년 계간 사상에 실린 원고를 토대로 국내학자 12명이 마키아벨리에서 니체까지 19명의 사상을 새로 정리했다. 강 교수는 김용민(한국외국어대) 황태연(동국대) 교수와 함께 이를 주도했고 마키아벨리 등 3명의 사상을 집필했다.

정치와 비전은 강 교수가 미국 버클리대에서 월린의 제자인 한나 피트킨을 사사한 인연으로 서강대 출신 제자들과 함께 3권으로 나눠 번역하고 있다. 이 책은 1960년 10장으로 출간됐다가 2004년 17장으로 대폭 수정 증보된 바 있다. 이번에 출간된 1권에는 플라톤에서 칼뱅까지 다뤘고, 2권은 마키아벨리근대정치, 3권은 탈근대현대 정치 사상에 대해 소개한다.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서양정치사상가로 마키아벨리를 우선적으로 꼽고 싶습니다. 정치적 이상(공화주의)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한 과도적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절대왕정)도 함께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이 마키아벨리를 둘러싸고 네오콘의 대부로 불리는 스트라우스, 아렌트와 월린의 의견이 갈린다. 스트라우스는 고대 정치의 복원을 이상으로 삼았으나 진리와 정의가 아니라 현실주의와 실용주의의 길을 택한 마키아벨리를 타락천사라고 비판했다. 아렌트와 월린은 마키아벨리야말로 정치를 종교와 윤리로부터 해방시켰다고 평가했다. 네오콘의 지지를 받은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실용주의를 택한 한국의 차기정부의 이념적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강 교수는 정치사상을 컴퓨터 운영체제(OS)에 비유했다. 존 로크가 서구자유민주주의의 버전 1.0이라면, 존 스튜어트 밀은 2.0, 존 롤스는 3.0이라는 식이다. 문제는 그것이 모두 자생프로그램이 아니라 외국산이란 점이다.

한국에서 3.1이나 3.2는 가능할지 몰라도 4.0은 나오기 어렵습니다. 서양정치사상에 대한 이해도 투철하지 못한 상황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한국만의 독특한 정치 현실에 대한 실천적 사고 체계를 발전시키고 이를 인류 보편의 가치로 발전시킬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는 한국이 독자적 정치사상을 빚어내기 위해서는 유대인 문제를 모델로 삼자고 말한다. 유대인 문제 해결을 위한 고뇌의 산물로서 예수의 영적인 해방, 마르크스의 사회경제적 해방, 아렌트의 정치적 해방이라는 비전이 인류 보편의 이념으로 발전했듯이 지극히 한국적 문제의 해결 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고민에서 진정한 자생적 이념이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권재현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