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부정선거 이야기 꺼낼까 봐 겁납니다.
일요일인 13일 오후 경북 청도군 청도역 앞 택시 승강장. 삼삼오오 모여 있던 기사들은 창피한 일로 청도가 유명해져 열차에서 내리는 손님까지 평소와 달라 보인다고 말했다.
인구 5만의 청도는 군수 재선거와 관련된 경찰 수사로 분위기가 흉흉하다. 5명이 구속됐고 9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1명은 긴급 체포된 상태.
또 선거운동원 2명이 잇따라 자살했다. 금품을 받은 주민 수천 명이 경찰 조사를 받는다는 얘기까지 나와 평온하던 농촌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화양읍에서 만난 60대 주민은 선거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라고 손사래를 쳤다. 금품 살포 혐의로 조사받은 선거운동원 양모(57) 씨가 6일 읍내 복숭아밭에서 농약을 먹고 숨지자 주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평생 함께 농사지으며 오순도순 살아온 동네 사람들이 큰 상처를 입었다며 왜 이렇게 됐는지 나도 답답해 죽겠다고 했다.
청도읍의 이장은 한나라당이 공천을 했더라면 후보들이 난리를 쳤겠지만 주민 수천 명에게 돈을 돌리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대선과 함께 실시한 경북의 3개 기초지자체 재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청송군을 제외한 청도군과 영천시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공천 비리를 우려해서다.
무소속 후보가 3파전을 벌여 정한태 후보가 총투표수 2만9625표의 34.3%(1만13표)를 얻어 2, 3위 후보(각각 8500여 표)를 누르고 당선됐다.
경찰이 수사를 확대하면서 주민의 걱정이 눈 덩이처럼 커졌다. 정 군수의 선거운동을 도왔거나 금품을 받은 주민이 5000여 명으로 파악되기 때문.
한 집 건너 전과자가 생기는 거 아니냐는 한숨이 나올 정도이다. 달아난 선거자금관리자 정수배(58) 씨의 입은 시한폭탄과 마찬가지다.
그는 정 군수의 친척으로 금품 살포의 실무책임자로 알려졌다. 경찰이 최고 5억 원의 현상금을 내걸고 수배했다.
군내 단체와 주민대표단은 최근 경북지방경찰청을 방문해 선처를 호소했다. 5만 원 안팎의 돈을 받은 경우는 대부분 동네 주민끼리의 인사치레이지 불법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은 경찰대로 고민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금품을 받은 주민에게 50배의 과태료를 매겨야 한다.
하지만 몇백만 원의 돈을 돌린 혐의로 조사를 받은 선거운동원 2명이 자살하고 수사 대상자가 늘어나자 군 전체의 불안한 분위기를 외면하기 힘들지 않으냐는 말이 나온다.
경찰은 돈을 받은 주민은 최대한 선처하는 대신 부정선거를 기획한 주동자급 운동원 20여 명은 구속 수사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과태료 50배 처벌은 현실적으로 지나친 점이 있는 데다 지역사회의 안정을 위해 선관위와 적절한 대안을 찾고 있다며 선거법 자체가 엄격한 만큼 없던 일로 하기는 어렵고 벌금형으로 최대한 부담을 덜어 줄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북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정 군수의 집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11일)은 사법처리를 위한 마지막 단계라며 금품 살포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를 상당수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권효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