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창전동 김모(46여) 씨 일가족 피살 사건은 전 프로야구 선수 이호성(41) 씨가 빚 때문에 저질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홍성삼 서울 마포경찰서장은 10일 사건 당일 오전 11시경 김 씨가 은행에서 1억7000만 원을 인출했는데 이 돈 때문에 이 씨가 김 씨 일가족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1억 원의 용처는 확인하고 남은 7000만 원의 사용처를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김 씨 일가족의 사인에 대해 홍 서장은 부검결과 두부 함몰 등이 발견됐긴 했지만 집에서 살해된 세 명의 사인은 질식사라고 밝혔다. 외부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김 씨의 큰 딸은 머리를 다쳐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홍 서장은 또 이 씨가 죽기 전 두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형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신의 빚 처리를 부탁하는 내용과 어머니 형 아내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적혀 있었다며 야구협회장에게 보낸 편지에는 옛 시절이 행복했다. 하늘나라로 먼저 가 있을께라며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었다고 밝혔다.
해외도피 계획도=이 씨는 범행 전 해외 도피까지 계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씨에게서 1억7000만 원을 빼앗은 뒤 김 씨 일가족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범행 당일인 지난달 18일 오전 10시경 서울 광화문 H여행사에 휴대 전화를 걸어 해외 항공편을 문의했다.
H여행사 관계자는 당시 이호성과 비슷한 이름의 남자가 전화를 걸어와 혼자 떠날 건데 파라과이행 항공편이 있느냐고 물었다며 파라과이를 거쳐 브라질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항공편을 알아본 이 씨는 이날 오전 11시경 김 씨와 함께 서울 서대문구 창전동 일대 은행 5곳을 돌며 1억7000만 원을 현금으로 인출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김 씨의 계좌를 추적한 결과 지난달 15일 김 씨가 1억7000만 원 정기예금을 해약한 뒤 은행 5곳에 분산 예치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김 씨는 사흘 뒤인 18일 은행 5곳에 예치했던 돈을 모두 다시 인출했다고 말했다.
당시 은행 페쇄회로(CC)TV에는 김씨와 동행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돈을 인출한 김씨가 은행 밖에 주차된 흰색 차량의 조수석에 타는 모습이 기록됐다. 경찰은 당시의 화면을 분석 중이다.
경찰은 이 씨가 김 씨를 협박해 돈을 빼앗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씨는 이어 이날 오후 김 씨와 세 딸들을 살해한 뒤 다음 날 새벽 자신의 아버지 묘소가 있는 전남 화순의 공동묘지에 김 씨 일가족의 시신을 매장했다.
곧바로 광주로 이동한 이 씨는 지난달 19일 오후 2시경 광주 남구에서 채권자 이모(여) 씨를 만나 5000만 원을 전달했다.
경찰은 채권자 이 씨에게 준 돈 중 5000만 원은 이 씨 형에게 전해졌다며 이 씨는 이후 3월 8일 채권자 이 씨를 다시 만나 1000만 원을 주고 자신의 내연녀 차모 씨에게도 4000만 원을 줬다고 말했다.
이후 이 씨는 경기도 일산과 전남 광주를 오갔고 9일 차 씨를 마지막으로 만나 호텔에 투숙했다 이날 자정경 서울 성수대교 인근에서 헤어졌다.
풀어야 할 수사 과제=이 씨가 김 씨의 돈을 빼앗은 뒤 김 씨의 딸들까지 모두 살해한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에 대해 경찰 일부에서는 완전 범죄를 꾀하기 위해서라는 추론이 있다.
그러나 김 씨의 큰 딸이 실종 직전 친구들에게 엄마와 재혼할 아저씨와 가족들이 사나흘 여행을 갈 것이라고 말할 만큼 자신의 존재가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진 상태에서 이 같은 추론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또 이씨가 빚 독촉을 하던 김씨에게 앙심을 품었다고 해도 굳이 어린 자녀까지 한꺼번에 살해한 이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공범이 있는지도 확인돼야 할 부분이다.
경찰은 김 씨 아파트 폐쇄회로(CC)TV를 통해 실종 당일인 지난달 18일 밤 김 씨의 집에서 대형 여행가방을 실어내는 남성과 이틀 뒤인 20일 오후 김 씨 아파트 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우고 달아난 남성 등을 확인했지만 이들이 동일인물인지는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약간 뚱뚱하고 체격이 큰 편인데 20일 주차장에서 달아난 남성은 호리호리한 체격이라며 두 사람이 동일인물인지 계속 분석중이다고 말했다.
경찰은 실종 당일 아파트 폐쇄회로(CC)TV와 20일 주차장 CCTV 정밀 분석을 통해 공범 여부를 밝히는 한편, 김 씨의 추가 피해액에 대해 조사 중이다.
단란했던 일가족이=김 씨 일가족이 처참하게 살해된 채 야산에서 발견되자 지인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침통해 했다.
김 씨의 친구 차경숙(46) 씨는 18일 오전에 여행을 가게 됐다고 문자를 보내와 재수를 시작하는 둘째 딸과 그저 바람이나 쐬러 가나보다 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대학에서 뮤지컬공연을 전공하던 큰 딸 정모(20) 씨는 학부 성적이 4.25일 정도로 모범생이었고 개인 홈페이지에는 최근 본 뮤지컬에 대한 꼼꼼한 감상평과 함께 한국 뮤지컬의 희망을 봤다. 나도 꼭 무대에서 훌륭한 공연을 하고 싶다는 글이 남겨져 있다.
이웃 주민은 세 딸이 다 예쁘고 착했다며 김 씨의 남편이 자살하기 전까지 단란한 가족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