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실종된 가운데 제18대 국회의 4년 임기가 오늘 시작된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거의 동시에 문을 여는 국회여서 여야()가 상생의 새 정치를 보여준다면 어느 때보다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국회가 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고시 발표를 놓고 여야는 첨예하게 맞서 있다. 고유가로 인한 심각한 민생고는 물론 선진화를 위해 고치고 바꿔야 할 법과 제도가 산적해 있는데도 아랑곳 않는 모습이다.
통합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장외투쟁까지 선언했다.
정치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정하는 것이고, 국회는 바로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겠다는 것은 공론의 장을 걷어차고 국회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소통의 통로가 돼 거리의 정치를 막아야 할 정당이 오히려 이를 부추기고 있다.
18대 국회는 여대야소()로 출발한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153석, 제 1야당인 민주당은 81석이다. 친박연대와 자유선진당 등을 포함하면 보수 정당들의 의석수는 거의 200석에 육박한다. 정상적인 국회라면 정치와 국정의 안정에 기여하겠지만 소수당의 떼쓰기가 다반사인 우리 정치의 현실로 미루어 오히려 충돌의 일상화가 벌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야당이 18대 국회 출범을 앞두고 장외로 나서겠다는 것도 수적 열세를 의식해 초반부터 기선을 잡으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그럴수록 한나라당은 힘의 우위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구도가 비록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긴 하지만 정치는 어느 일방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긴 하지만 대화와 타협도 무시할 수 없는 민주주의 원칙이다. 늘 야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존중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타협도 하고 설득도 해야 한다. 야당도달라져야 한다. 소수의 한계를 떼쓰기로 만회하려 한다면 정치는 실종되고 국회는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30년 정치 역정을 마무리하면서 야당은 물리적으로 의사진행을 막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여당은 끝까지 야당과 성실하게 타협한다는 선언을 하면 좋겠다고 했다. 어제 임기를 마친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국회는 다수결이 최고의 원칙이라면서 여당은 많이 듣고 포용해야 하고, 야당은 국민이 원하는 것을 정책화한다거나 대안을 제시해 국민이 기대고 싶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299명의 18대 국회의원들이 늘 마음속에 새겨야 할 고언()이다.
18대 국회는 17대 국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17대 국회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인 152석을 얻어 정치의 안정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지만 이념 과잉에 빠져 초반부터 4대 개혁입법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분란이 그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민생이 실종되고 정당 간에 대화와 타협이 사라지고 국회는 난장판이 되다시피 했다. 농성중인 의사당의 출입문을 열기 위해 쇠사슬과 전기톱까지 등장했으니 민의의 전당이라고 하기조차 민망했다. 16대 국회보다 3배나 많은 정부 입법 제출과 의원 입법 발의가 있었으나 법안 가결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18대 국회는 정치다운 정치를 해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선진화를 앞당기는데 기여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한미 FTA 처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여야()가 원 구성 협상을 가능한 빨리 끝내고 곧바로 한미 FTA 비준동의에 필요한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