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주말 촛불집회는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보였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종로구 세종로로 이어지는 차도 광장을 누비며 평화롭게 놀이와 축제처럼 진행되던 7일 집회는 자정을 넘겨 8일 새벽 쇠파이프와 각목이 처음으로 등장하며 결국 폭력 사태로 얼룩졌다.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폭죽을 쏘아대는 과격 시위를 자성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놀이광장 세종로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 농성 이틀째인 7일 서울광장과 세종로는 촛불시위대의 놀이 광장이었다.
4만여 명(경찰 추산)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서울 곳곳에서 몰려든 노점상들까지 가세해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가족단위 참가자들은 도로 한복판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으며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에는 텐트를 친 가족들도 있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회사원 김석원(41) 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의 먹을거리 문제라 연휴도 팽개치고 2박 3일 시위를 나왔다며 서울 한복판에서 텐트를 치고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추억도 만들고 아이들에게 참여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광장 주변에는 이들 72시간 집회 참가자들을 위해 광우병 관련 길거리 특강,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 상영, 인디밴드의 공연이 진행됐다.
오징어버터구이를 팔던 노점상 김모(42) 씨는 오후 7시에 광화문으로 와서 다음날 오전 1시경까지 장사를 하는데 6일과 7일에 각각 40만50만 원어치를 팔았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못지않은 대목을 만났다고 털어놨다.
밤 12시 지나자 시위 과격화
7일 밤 12시를 지나며 가족단위 참가자들이 대부분 귀가한 뒤 촛불집회는 격렬한 거리시위로 바뀌었다.
8일 오전 1시경 7000여 명(경찰 추산)의 시위대가 세종로 사거리에 집결한 가운데 한 시위대원이 대통령이 직접 나오라며 전경버스 지붕 위로 올라갔다. 이 시위대원은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아래로 추락했다.
이에 시위대는 철제 사다리를 이용해 버스 위로 올라갔고 경찰은 방패로 밀어내며 시위대를 향해 분말소화기를 뿌렸다.
시위대는 지하철 광화문역 공사장에서 가져온 쇠파이프와 망치, 경찰로부터 빼앗은 소화기 등으로 버스를 부수는 한편 공사장 수도에 호스를 연결해 전경들에게 물을 뿌렸다. 또 일부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폭죽을 연달아 쏴대며 기세를 올렸다. 다른 일부는 스프레이에 불을 붙여 화염을 내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 모두 수십 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촛불집회를 주최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국민대책회의)는 8일 시위대 중 최소 20여 명이 머리와 얼굴을 다쳐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도 전의경 37명이 다치고 차량 19대가 파손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시위 현장에서 11명을 연행해 청소년 1명을 석방하고 10명을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쇠고기 수입 반대 거리시위가 시작된 지난달 24일 이후 시위대가 쇠파이프를 휘두른 것은 8일이 처음이라며 이 같은 1970, 80년대식 극렬시위가 계속되면 물대포 사용 자제 방침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피해상황을 종합해 시위를 주최한 국민대책회의에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방침이다.
시민들 평화집회 초심으로 돌아가야
촛불집회가 시간이 갈수록 과격한 양상으로 치닫자 평화 시위를 주창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8일 새벽 전경버스 창살을 뜯어내려는 일부 시위대를 향해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던 직장인 지모(25여) 씨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세종로를 가득 메운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사 전달 효과가 있다며 비폭력의 가치를 훼손하면서까지 애초에 불가능한 청와대 진격을 강행하는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국민대책회의 홈페이지에도 시위대의 폭력 사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누리꾼 희망세상은 일부 시민들이 과도한 폭력을 사용한 것은 유감이고, 이런 행동은 지난 한 달간 촛불집회의 모든 성과를 날려버린 불필요한 행동이었다. 폭력은 경찰에게 폭력 진압의 명분을 줄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 누리꾼은 촛불 시위 현장에서 한 참가자가 전경에게 소화기를 휘두르는 사진과 외국에서 소화기를 경찰관에게 던지려다 총을 맞고 사망한 충격적인 사진을 대비하기도 했다.
신광영 유덕영 neo@donga.com fir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