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대첩이었다.
한국 야구가 숙적 일본을 꺾었다. 야구 대표팀은 16일 베이징 우커쑹 야구장 제1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예선 풀리그에서 일본에 5-3 역전승을 거두고 3연승을 달렸다.
한국은 이날 승리로 프로 선수가 참가한 1998년 방콕 아시아경기부터 일본과 23번 맞붙어 12승 11패로 앞섰다.
야구 대표팀은 예선 3경기를 모두 2점 차 이내로 이겼다.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는 모두 9회에 승부를 뒤집는 역전극을 이뤘다.
한국은 14일 비로 연기된 17일 중국과 서스펜디드 게임에서 이기면 쿠바(4승)와 함께 사실상 4강 진출을 확정짓는다. 일본과 미국은 2승 2패로 공동 3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 강국 미국 일본을 연파한 한국 야구의 힘은 김경문(두산) 대표팀 감독의 도박사를 방불케 하는 승부수와 믿음의 야구에서 비롯됐다.
압박 그리고 도박=김 감독은 감()을 믿는다. 눈빛이 빛나는 신인 선수를 과감히 기용한다. 그의 승부수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적중했다.
이대호(롯데)는 일본에 2-2로 맞선 9회 무사 1루에서 희생번트를 댔다. 미국전에 이어 이날 0-2로 뒤진 7회 동점 2점 홈런을 날린 이대호의 번트는 뜻밖이었다.
김 감독은 진갑용(삼성)이 볼넷을 얻어 계속된 1사 1, 2루에서 일본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주니치)가 왼손 투수임에도 김민재(한화) 대신 왼손 타자 김현수(두산)를 대타로 내세웠다. 김현수는 왼손 타자는 왼손 투수에 약하다는 속설을 1타점 결승타로 뒤집었다.
15일 캐나다와의 경기에 류현진을 선발로 내세운 것도 그렇다. 류현진은 3월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에서 캐나다에 1과 3분의 2이닝 동안 홈런 1방 등 3안타 3실점하며 패전 투수가 됐다. 급성 장염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다시 기회를 줬고 류현진은 완봉승으로 화답했다.
치고 달리며 흔들기=김 감독은 뛰는 야구를 즐긴다. 주자에게 기회가 되면 뛸 것을 지시한다. 이종욱 고영민(이상 두산)은 빠른 발로 도루를 시도한다. 투수와 내야진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종욱은 일본에 3-2로 앞선 9회초 2, 3루에서 3루쪽 번트 안타로 1타점을 올리더니 2루 도루를 시도해 일본 포수 아베 신노스케(요미우리)의 2루 악송구를 유도하며 3루까지 내달렸다. 그 사이 3루 주자 김현수는 여유 있게 홈을 밟았다.
13일 미국과 경기에서 6-7로 뒤진 9회말 대타 정근우가 2루타를 치고 나간 뒤 빠른 발을 이용해 김현수의 2루 땅볼 때 3루, 이택근의 2루 땅볼 때 홈까지 뛰어들어 동점을 만든 것도 뛰는 야구의 백미였다.
믿음과 뚝심의 야구=김 감독은 한 번 기용한 선수는 웬만큼 부진해도 계속 기용한다. 올 시즌 연습생 출신인 김현수가 중심 타선으로 거듭난 것도 믿음의 야구의 결과물이다.
김 감독은 이승엽(요미우리)이 부진하지만 4번 타자로 계속 기용하고 있다. 승엽이는 감독만큼이나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많다. 하지만 준결승 등 큰 경기에서 제몫을 해줄 것이라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였다.
김 감독은 일본 호시노 센이치 감독과의 신경전에서도 의연했다. 호시노 감독은 지난해 12월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한국이 위장 오더를 낸 것에 대해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난다며 맹비난했다. 12일 감독 회의 직후에도 한국에 자신 있다. 선발 출전 명단이나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김 감독은 경기로 보여주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리고 일본에 짜릿한 역전승을 이끌었다. 뚝심의 승리였다.
황태훈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