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어제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이 6자회담 103합의의 이행을 거부함으로써 조선반도 핵문제 해결에 엄중한 난관이 조성됐다고 비난하면서 그 대응조치로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 조치를 중단하고 원상 복구도 고려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자신들은 103합의를 착실히 이행하고 있는데 미국이 북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부득불 대응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북의 핵 폐기 의사를 의심케 하는 억지 주장일 뿐이다. 북이 거론한 103합의는 북이 모든 핵 프로그램에 대해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하면 미국은 북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다는 것이다. 신고는 완전하고 정확한 것이어야 한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검증을 전제로 한 것이다. 북이 진정으로 핵 폐기 프로세스를 진행할 의사가 있다면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검증체계를 수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북의 신고 내용을 확인하려면 샘플 채취, 불시 방문, 미신고 시설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것은 핵 검증의 일반적인 국제 기준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은 자주권 침해 운운하면서 이를 거부하고 있다. 북이 신고를 정확하게 했고, 더 이상 숨길 것이 없다면 검증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밝힌 것도 북에 부담이 됐을 것이다. 중국이 미국에 검증 중재안을 제시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그동안 베이징 올림픽에 쏠렸던 국제사회의 이목이 다시 북핵 문제로 옮겨올 것이 분명하고, 중국의 압박까지 예상되자 북은 비핵화 2단계 이행의 지체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려 하지만, 상투적인 책임 떠넘기기 전략에 넘어갈 6자회담 당사국은 없다.
북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시인으로 촉발된 2차 북핵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6자회담을 출범시킨 지 오늘로 꼭 5년이 된다. 그러나 6자회담은 북의 핵실험 강행을 막지 못했고, 북핵 폐기를 위한 213합의와 103합의까지 마련했지만 북핵 문제는 핵 신고와 영변 핵시설 불능화 단계에 겨우 도달했을 뿐이다. 북핵에 관한 한 지난 10년은 확실히 잃어버린 10년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 비상한 각오를 다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