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이천 하이닉스반도체 공장 옆 6만m(1만8000여평)에는 여러 꽃들이 피어 있다.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가 1983년 설립 때 공장 증설을 위해 사둔 땅인데 2년 전까지 다년간 콩과 상추를 심었다. 하이닉스로서는 26년째 겪고 있는 수도권 규제 때문에 반도체 생산공장이 돼야 할 땅이 채소밭이나 꽃밭으로 둔갑한 현실이 실업자들의 비명과 겹쳐진다.
경기 여주 KCC건설 유리공장도 공장 증설이 시급하지만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묶여 엄두도 못 낸다. 재계는 18일 이명박 대통령과 회동에서 이들 두 공장의 증설 허가를 거듭 요청할 계획이다. 투자부진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이 두 공장은 이 정부가 진정 비즈니스 프렌들리인지를 판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수도권 억제 정책은 환경보호 인구밀집 방지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중복 규제로 기업을 괴롭히고, 첨단산업의 투자를 막는 부작용이 크다. 수도권 규제에 가로막힌 기업들이 지방으로 발길을 돌리면 다행이지만, 해외로 나가거나 투자를 미루고 심지어 폐업도 한다. 업계에선 하이닉스가 급해지면 중국 공장 증설을 대안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경기도에서 해외로 나가는 기업이 매년 1000개가량이다. 기업을 따라 돈과 일자리가 함께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균형발전이란 허황된 미신() 때문에 수도권을 묶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 규제를 풀겠다던 대선공약과 달리 지방의 반발을 겁내 구경만 하고 있다.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을 위한 수도권의 범위, 인구집중 유발시설의 종류, 권역별 행위제한의 내용과 구체적인 기준 같은 세부사항은 모두 대통령령으로 정해져 있다. 수도권 규제의 대부분은 국회의 법률개정 없이 정부가 직접 고칠 수 있는데도 지금껏 방치하고 있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1분기 -0.9%, 2분기 0.1%다. 반면 6월말 현재 546개 상장제조업체의 잉여금이 392조원에 이른다. 자본금의 6.9배를 투자하지 않고 현금으로 쌓아둔 것이다. 중국에 투자했던 상당수 기업은 중국의 노동 분야 간섭이 심해지면서 국내로 유턴하고 싶어 한다. 지금이 잘못된 수도권 규제를 바로잡을 적기()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의 경기침체를 겪고서야 2002년부터 수도권 규제를 풀기 시작했다. 혼다자동차는 도쿄 인근에 300억 엔(약 3150억원) 규모의 투자에 나설 수 있었다. 작년 공장설립은 1782건으로 2002년에 비해 2배 이상이다. 덕분에 일자리가 부쩍 늘었다. 한국의 100만 청년이 일자리가 없어 백수로 소일하는데, 일본 청년들은 직장을 골라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