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와 정부가 27일(현지 시간) 밤늦게까지 이어진 마라톤협상 끝에 구제금융법안에 잠정 합의한 것은 합의가 제때에 이뤄지지 못할 경우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을 엄청난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의회와 정부 지도자들은 29일(현지 시간으론 28일) 아시아 주식시장이 개장하기 전까진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절박한 데드라인을 갖고 끝장 토론 수준으로 협의를 진행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실에 모인 민주당 의원들과 존 보너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사무실에 모인 공화당 의원들이 여러 차례 수정안을 내거나 양보안을 제시하는 등 진통 끝에 잠정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협의 도중에 펠로시 의장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실시간 담판을 진행하기도 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 역시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 버락 오바마 민주당대선후보와 통화해 합의를 이끌어냈다.
의회 지도자들은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하기도 했다. 버핏 회장은 그동안 인터뷰를 통해 재무부의 구제금융 방안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혀 왔다.
협의 도중 협상장에서 고성이 흘러나와 취재진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의원 보좌관들에 따르면 협의 도중 맥스 바커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금융회사 경영진의 보수 제한 문제를 논의하면서 폴슨 장관에게 고함을 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 과정의 내부 정보가 외부로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협상장에 있던 의원 보좌진의 블랙베리(e메일 송수신이 가능한 휴대전화)를 수거하기도 했다.
의회와 정부 관계자들은 합의 내용은 28일 최종 문안을 조율한 뒤 공개하겠다며 최종 합의 내용은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 언론 보도를 통해 흘러나온 내용을 보면 25일 오전 상하원 의회 지도자들이 합의했던 사항들이 큰 틀을 이루고 있다.
7000억 달러를 한꺼번에 승인하지 않고 분할해서 지출할 수 있도록 했고 금융회사 경영진의 보수에 제한을 가할 수 있도록 했으며 재무부가 지원을 받는 금융회사의 주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막판에 대체안을 제시해 협의 과정을 좌초 위기에 몰아넣었던 보수 성향의 공화당 하원들의 의견도 일부 반영했다.
구제금융 대신 미 정부가 모기지 증권 등을 보증하는 방식을 통해 납세자 부담을 줄이자는 이들의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정부 보증 방안을 포함시키기로 한 것. 하지만 폴슨 장관이 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어 실효성을 갖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치영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