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국가 부도가 초읽기에 들어간 북구 소국() 아이슬란드. 이 나라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만 달러가 넘었던 부자 나라였다. 도대체 1년도 안 된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22일 인구 약 30만2000명 중 20만 명이 몰려 사는 수도 레이캬비크.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택시기사는 주유소에서 어렵지 않게 기름을 채웠다.
사람들이 물건을 싹쓸이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시내에 있는 24시간 슈퍼마켓 1011의 진열대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불빛도 꺼지지 않았다. 전망대 페르난에서 바라본 이 북극권 도시의 야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바깥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이면에서는 이미 고통은 시작됐다.
화려한 빚 잔치의 끝은 한숨 뿐
기자가 머문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스테판 한트 씨(37). 그는 2년 전 새 집을 2400만 크로나를 주고 샀다. 당시 1000만 크로나는 지불하고 나머지 1400만 크로나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레이캬비크 시민 중에선 한트 씨 같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몇 년 전부터 엄청나게 많은 집들이 레이캬비크 주변에 지어지면서 주변에 아예 위성도시 하나가 새로 생길 정도였다.
집값이 오르니까 너도 나도 앞 다퉈 집을 샀다. 한트 씨도 그 행렬에 끼어들었다. 은행은 집값 100% 대출이라는 광고문구를 걸고 적극 영업을 했기 때문에 대출을 받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한트 씨 집은 깡통주택이 됐다. 주택가격이 대출액보다 적어진 것.
반면 주거비는 물가상승률에 연동된 이자율로 인해 1년 사이에 20%나 올랐다.
택시기사 라그나르 에이릭손(49) 씨는 2년 전 새 차를 사기 위해 은행에서 차량가격의 100%를 대출받았다. 그런데 당시 아이슬란드 정부가 오래전부터 외국 예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크로나화의 이자율을 높게 책정했기 때문에 그는 크로나화를 피해 유로화로 자금을 조달했다.
실제 그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엔, 유로, 스위스프랑 등 외화로 대출을 받고 있었다. 지금 그것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아이슬란드 국민은 80크로나만 있으면 1유로를 살 수 있었다. 지금 환율은 1유로 당 130크로나에 가깝다. 에이릭손 씨는 크로나화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대출금이 하루아침에 두 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2003년 민영화된 아이슬란드 은행도 똑같은 길을 걸었다. 이들 은행들은 지난 수년간 영국과 네덜란드로 급속히 투자를 확대했다. 37세의 젊은 은행장이 이끈 아이슬란드 최대 카우프싱 같은 은행은 유럽의 경쟁자들보다 훨씬 더 좋은 이자율을 제공했다.
지난해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의 총 외환보유고가 20억 유로에 불과한 상황에서 지난해 아일랜드 은행들의 총자산은 1000억 유로까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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