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로 예정됐던 이명박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의 청와대 오찬 회동이 펑크 나고 말았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없는 만남은 모양이 안 좋다고 해 청와대 측이 오찬 예정 2시간 전까지 정 대표의 참석을 요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원래 이번 회동은 일찍이 불참을 선언한 정 대표를 빼고 이 총재와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만 참석하기로 돼 있었으나 이마저도 무산돼 이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 모두가 떨떠름하게 됐다.
청와대는 제1야당 대표가 불참하면 금융위기와 예산안 처리 등에 대한 초당적 협력문제를 논의한다는 게 무의미하다고 설명했다. 말은 맞지만, 그렇다면 애초 정 대표가 참석하도록 적극적으로 설득했어야 하지 않을까. 막판에 이 총재의 말에 따라 허겁지겁 정 대표의 참석을 간청했으니 한심하다. 더욱이 정 대표는 요즘 당의 노선문제에 휘말려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날 오찬과는 별도로 청와대가 선진당의 요청에 따라 이 대통령과 이 총재의 단독 회동을 추진 중이었으니 민주당의 심사가 좋을 리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 회동 연기에는 정치적 함의가 작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산안과 주요 민생법안의 국회 통과에는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인데 정 대표가 불참한다면 자칫 상황만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 같다. 민주당을 우회적으로 압박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이 계속 거부할 경우 민생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게 돼 청와대로선 손해 볼 게 없다는 판단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정 대표가 청와대 오찬에 가기에는 당내 사정이 너무 복잡하다.
민주당 비주류는 그제 민주연대를 발족하고 야당 내 야당을 기치로 내걸었다. 당내 노선투쟁을 선포하는 신호탄이다. 야성() 회복 선명 야당 반()독재투쟁 같은 흘러간 구호들도 다시 등장했다. 정 대표의 대여() 투쟁 강도도 이에 영향을 받은 듯 한나라당의 예산안 심사 강행에 상임위원회 활동 전면 거부로 맞서고 있다. 당 일각에선 투쟁성을 높인다고 지지율이 올라가겠느냐는 얘기도 나오지만 정 대표의 청와대 회동 참석은 물 건너간 것 같다.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