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며 정상 정복의 정신을 되새긴다.
새로운 결심을 할 때 흔히 산을 오른다. 축구대표팀도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해 제주 한라산을 등반한다. 보통은 훈련을 시작할 때 산을 오르지만 이번엔 10일 시작해 23일 끝나는 제주 전지훈련 마지막 날 한라산을 오른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체력 훈련이 아니라 정상 정복의 희열을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고개를 넘을 때마다 힘이 들지만 끝까지 참고 정상에 섰을 때의 기쁨을 몸으로 느끼게 해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겠다는 생각이다. 산행을 전지훈련 마지막 날로 잡은 것은 초심의 자세로 2월 11일 이란과의 원정 4차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한국은 최종 예선에서 2승 1무(승점 7)로 이란(5점)을 제치고 B조 선두를 달리고 있다.
허 감독은 대사를 앞두고 매번 산에 올랐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코치로서 김호 감독을 보좌할 때 처음 한라산을 올랐다. 당시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이라크가 일본과 비겨 주는 도하의 기적으로 본선에 진출해 대표팀이 어수선할 때 한라산을 오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허 감독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었을 땐 북한의 금강산을 오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후 대표팀은 거스 히딩크, 움베르투 코엘류, 요하네스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감독 등 외국인 사령탑 시절엔 선수단이 아닌 코칭스태프와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을 포함한 협회 관계자들이 함께 산을 오르며 필승의 의지를 다졌다.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땐 4강 신화를 썼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땐 6회 연속 본선에 진출했다. 김호 감독이 이끈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도 제주 훈련 때 한라산을 등반했고 당시 대표팀은 사상 첫 8강 진출이란 성적을 냈다.
성인 대표팀 감독과 선수단이 함께 산을 오르는 것은 1994년 초에 이어 15년 만의 일이다. 허 감독은 월드컵 본선 진출까지는 여러 고비를 넘겨야 한다. 한라산 등반이 어려운 시간을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종구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