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취업비자(H-1B)를 취득해 미국 보스턴의 정보통신업체에서 2년간 근무하던 조모 씨(39)는 최근 평소처럼 출근해 컴퓨터를 켰다가 인사담당관으로부터 해고통지 e메일을 받았다. 짐을 싸서 사무실을 떠나야 하는 시간은 해고통보 당일 오후 5시까지로 정해졌다.
조 씨는 짐을 싸는 동안 인사담당관이 내 자리 주변에서 나를 지켜봤다. 혹시 컴퓨터에서 기밀문서라도 빼 갈까봐 감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정말 나빴다고 말했다.
미국 유수의 경영대학원을 나와 월가 취업을 꿈꿨던 홍모 씨(28)에게도 지난 몇 달간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대학 졸업 후 임시 취업이 가능한 현장실습(OPT) 신분으로 뉴욕 헤지펀드에서 근무하면서 H-1B비자 스폰서를 약속 받았지만 경기침체로 흐지부지된 것. 결국 그는 1년의 OPT 기간을 마치고 최근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경기침체로 미국에서 한국 유학생 등 외국인 전문인력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매년 12만 명의 외국인 전문인력에게 H-1B를 발급해 주고 있지만 매년 지원자가 100만 명을 넘을 정도로 H-1B 취득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게다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부실자산 구제 프로그램(TARP)의 발효는 외국인 취업의 기회를 더욱 줄여 놓았다. TARP는 정부의 자금을 받은 기업이 외국인을 고용할 경우 미국인에게 일자리를 우선 제공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과 함께 해당 외국인이 특정 업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소명케 하고 있다.
하버드대, 펜실베이니아대 등의 경영대학원 취업센터는 최근 외국인 학생들에게 보낸 공문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전하면서 경제난으로 미국 기업이 제시한 취업 제의가 취소될 가능성이 있음을 유념하라고 밝혔다.
뉴욕의 한 대학원을 내년 봄에 졸업하는 변모 씨(33)는 요즘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해외유학생 채용에 비교적 관대했던 GE, AMEX 등이 올해부터 인턴 채용 기준을 영주권자 또는 시민권자로 제한해 버린 것. 변 씨는 원서지원조차 하지 못하게 한 것은 외국인들의 현지 취업을 사실상 봉쇄하겠다는 의도라며 한숨을 쉬었다.
궁여지책으로 학교로 돌아가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조지워싱턴대에서 MBA 학위를 받은 김모 씨(31)는 취업비자 스폰서를 구하기 힘들어 조지타운대 대학원에서 정보기술(IT) 분야를 다시 공부하기로 했다.
일부 유학생은 논문 제출을 미루는 방법으로 비싼 학비를 감수하고 유학생 신분을 더 유지하기도 한다. 박사논문 마무리 작업 중인 양모 씨(36버지니아 주 거주)는 한 학기 정도 더 유학생 신분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발효 지연도 취업을 꿈꾸는 한국인들을 좌절시키고 있다. 한미 FTA에는 연간 H-1B 발급 한도와는 별도로 한국인들에게 취업비자를 할당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기 때문.
미국 내에서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전문인력이 늘어나고 있는 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재능 있는 젊은 외국인들이 떠나는 것은 혁신의 씨앗이 송두리째 유출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하태원 이기홍 triplets@donga.com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