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을 다 내느니 차라리 회사 문을 닫는 게 낫다고 할 정도로 전 세계 기업들을 벌벌 떨게 하는 반독점(antitrust)법. 기업담합과 독점을 규제하는 이 법이 미국에서 2000년 이후 주춤했으나 다시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럽도 이를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거세지는 반독점 규제
12일 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 인텔에 13일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최대 10억 유로(약 1조6900억 원)의 벌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자사 칩을 이용하는 PC업체들에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미국 반도체칩 회사 AMD와의 공정 경쟁을 저해했다는 이유다. 벌금 추정액은 EU가 2004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 부과했던 벌금(4억9700만 유로)의 두 배를 넘는 사상 최대 규모다.
최근 법무부 반독점 부서 책임자로 임명된 미국 크리스틴 바니 차관보는 11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친기업적 정책을 펴면서 반독점법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던 것과 달리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규제에 나서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그는 부시 행정부는 독과점 기업의 권력 남용을 막는 데 극도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며 하지만 정부는 공정 경쟁이 위협받는 곳에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구글-야후와 MS-야후 합병 시도가 이어지면서 특정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떨고 있는 기업들
미국은 빌 클린턴 정부 때까지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반독점 규제에 앞장섰다. 2000년 회사 분할 판결로까지 이어진 MS에 대한 규제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같은 한국 기업들도 줄줄이 걸렸다. 그러다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비판이 일자 부시 행정부 때 규제 완화로 선회한 것.
미국이 주춤하는 동안 EU는 유럽지역 밖에서 이뤄진 인수합병(M&A) 건에 대해서조차 유럽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자체 조사를 벌여 벌금을 부과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국 기업인 GE와 하니웰의 합병 시도를 무산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EU는 한국 STX의 노르웨이 크루즈선 건조회사 아커야즈 인수를 조사한 바 있고 현재 대한항공을 포함한 항공사들의 담함 건에 대한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경쟁적으로 규제에 나설 경우 중국 등 신흥 강대국도 동참할 태세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통신 에너지 금융 의료 농업 등 대부분 분야의 대기업 독점이 타깃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정은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