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세계의 핵 파수꾼으로 불리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배출한 것은 세계 2위의 경제력과 풍부한 해외 인력, 외교시스템의 결과물이다.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비롯해 국제사법재판소, 국제에너지기구, 아시아개발은행 등 핵심 국제기구 수장 자리를 장악한 배경에는 장기적이고 치밀한 외교 전략이 버티고 있다.
국제기구에 넓게 포진한 인력
일본은 1957년 유엔직원 1호를 배출한 이후 폭넓게 국제기구 인맥을 양성해왔다. 아카시 야스시() 씨는 이후 40년간 유엔에 근무하며 홍보담당 사무차장 등 요직을 거쳤다. 오가타 사다코() 씨는 1968년 유엔 일본대표고문을 시작으로 오랜 유엔 경험을 쌓은 끝에 1991년부터 10년간 난민고등판무관을 지냈다.
10년째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마쓰우라 고이치로() 씨는 50년째 외교현장을 누비는 현역이다. IAEA 사무총장에 당선한 아마노 유키야() 씨는 군축과 비확산, 원자력 업무를 중점적으로 맡는 등 정부 차원의 경력관리 흔적이 역력하다. 경제력이 커지면서 수많은 인력이 국제기구에 진출하면서 지금은 중견간부로 성장해 있고, 지금도 국제기구를 찾는 일본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인력 재정 백업 세 박자 척척
횡적, 종적으로 두꺼운 인맥에 바탕을 둔 총력외교도 돋보인다. 북핵문제 때문에 IAEA 사무총장 자리에 욕심을 낸 일본은 아소 다로() 총리까지 나서 전방위로 뛰었다. 일본은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다양한 당근을 제시하면서 득표활동을 지원했다.
민관 합동외교도 강점이다. 외무성의 해외진출 기업 지원 기본방침은 공관과 기업이 일본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협력체제를 강화한다. 현지에서의 정보제공, 인맥형성에 협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외무성 본부 인력은 2200명, 재외공관 인력은 3300명이다. 각각 900명과 1100명 수준인 한국의 3배 가까운 규모다. 올해 외무성 예산은 6700억 엔. 이 가운데 국제사회에 유무상 지원 등의 형태로 베푸는 정부개발원조(ODA)는 4363억 엔이다. 유엔 등 국제기구 분담금 규모(약 1000억 엔)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이처럼 높은 기여도를 명분으로 국제사회 발언권 확대를 꾸준히 도모해왔다. 2007년 유엔본부와 산하기관의 전문직 일본인은 108명으로 미국 독일 등에 이어 세계 5위. 일본은 이를 300명으로 늘리기 위해 정부에 국제기구 인사센터를 설치해 조직적 채용 지원을 하는 등 범정부 차원에서 대처하고 있다. 유엔기구의 자원봉사자도 100명이 넘는다.
IAEA 사무총장 선거가 예정된 올해엔 군축과 비확산, 원자력 평화이용 관련예산으로 160억 엔을 책정하는 전략적 지출이 눈에 띈다. 선거 직후에는 원자력발전 기술을 국제사회에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등 치밀한 전후 백업시스템을 가동하며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장기전략
일본 외교의 최대 목표 중 하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이다. 국력에 걸맞은 국제사회 지위와 발언권을 확보하겠다는 것. 틈만 나면 안보리 확대를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임이사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벌써 아군이 됐고, 미국도 우호적이다. 핵심 국제기구 수장을 차례로 꿰찬 것은 이를 위한 주변 강화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일본이 올해 통가, 라트비아, 그루지야, 부르키나파소에 대사관을 신설하는 등 재외공관 확장에 나선 것도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염두에 둔 것이다.
윤종구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