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매장 앞에서 한 남성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서성댄다. 십중팔구 매장 안에는 그의 부인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매장을 훑고 다닌 지 한두 시간이 지났건만 살 물건을 결정하려면 아직 멀었다. 남성은 투덜댄다. 나 같으면 벌써 물건 사고 집에 갔겠다. 여성은 생각한다. 그거 하나 참을성 있게 못 기다리나.
미국 미시간대 진화심리학자 대니얼 크루거 교수팀은 이 같은 남녀의 쇼핑 행태 차이가 남성은 사냥, 여성은 채집을 맡았던 원시시대의 습성이 지금까지 유전자에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사려 했던 것만 구입해 바로 나오는 남성의 쇼핑 행태는 원시시대에 사냥감을 발견해서 죽인 뒤 바로 어깨에 짊어지고 돌아오는 남성의 사냥 행태와 유사하다. 반면 사려는 물건의 색깔, 스타일을 꼼꼼히 따지고 끊임없이 점원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물건을 고르는 여성의 쇼핑 행태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가장 잘 익고 때깔 고운 열매를 찾으려 덤불을 뒤지던 원시시대 채집 행태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미 ABC방송은 크루거 교수팀이 실험을 통해 이 주장을 입증해냈다고 9일 보도했다. 크루거 교수팀의 연구는 심리학전문지 사회진화문화 심리학 저널 12월호에 쇼핑 행태에서 드러나는 성별 차이에 숨어있는 진화된 식량징발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크루거 교수팀은 남녀 대학생 467명에게 여러 상황을 설명하는 명제를 제시하고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을 고르도록 했다. 그랬더니 남녀 성별에 따라 사냥꾼과 채집자의 성향으로 크게 구분됐다. 남학생은 대부분 낯선 대형 쇼핑몰에 가면 필요한 것을 최대한 빨리 구입하려고 한다(사냥꾼 습성)는 명제를 고른 반면 여학생은 대개 다양한 색과 스타일의 물건을 살펴본 뒤 가장 원하는 물건을 골라낼 수 있다(채집자 습성)는 명제를 택했다. 물론 오늘날 쇼핑몰을 사냥터로 여기지 않는 남성이나 쇼핑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여성들도 있지만 실험 결과는 남녀의 쇼핑 행태가 사냥과 채취의 습성을 반영할 것이라는 예상과 대략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크루거 교수는 이 실험 결과가 왜 저런 식으로까지 해야 하나라며 여성의 쇼핑 행태에 진저리를 치는 남성이 조금이라도 여성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동용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