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를 던지지 않는 투수가 있을까? 각 팀 에이스 중 슬라이더를 못 던지는 투수가 있을까?
동아일보가 두산에서 입수한 전체 8개 구단 투수의 구종 및 스피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정답은 있다였다. 직구를 던지지 않는 투수는 삼성 셋업맨 정현욱이다. 두산 전력분석팀이 올해 정현욱의 구종을 분석한 결과 직구는 하나도 없었다. 삼성 전력분석팀 역시 정현욱은 직구를 던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현욱은 변화구만 던지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정현욱은 올해 시속 152km의 강속구를 던진 적이 있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는 정현욱이 일반적인 직구로 알려진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지 않기 때문이다.
포심 패스트볼(사진1)은 4개의 실밥을 잡고 던지는 구종으로 피칭의 기본이다. 손가락으로 실밥을 채기 때문에 스피드가 가장 많이 난다. 반면 정현욱은 손가락을 2개의 실밥에만 걸치는 투심 패스트볼(사진2)을 던진다. 투심은 포심과 비슷하지만 공기 저항을 더 받기 때문에 스피드가 약간 떨어진다. 대신 타자 바로 앞에서 미세한 변화를 일으켜 많은 투수들이 애용한다.
8개 구단 투수를 통틀어 포심을 던지지 않는 투수는 정현욱이 유일하다. 두산 자료에는 정현욱이 올해 투심과 커브, 포크볼 등 3가지 구종만 던졌다고 나와 있다. 허삼영 삼성 전력분석팀 대리는 정현욱이 3년 전까지는 포심을 던졌지만 지난해부터 볼 끝의 움직임에 초점을 두면서 투심만 던지고 있다며 워낙 힘이 좋아 공을 누르는 듯한 느낌으로 투심을 던진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을 때는 시속 150km도 나온다고 말했다.
포심이 직구의 기본이라면 일반적인 변화구는 슬라이더(사진3)다. 프로 선수는 물론이고 고교 선수들도 던질 줄 아는 구종이다. 하지만 올해 LG의 왼손 에이스 봉중근은 슬라이더를 전혀 던지지 않았다. 이는 봉중근이 신일고 2학년 때 미국프로야구에 진출해 슬라이더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봉중근은 올해 직구와 커브, 체인지업 등 3개의 구종으로 11승(12패)을 거뒀다. 그는 내년 전지훈련 때 꼭 슬라이더를 배워 실전에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포크볼(사진4)을 주무기로 다승왕(14승)에 오른 롯데 조정훈의 비밀도 밝혀졌다. 조정훈의 포크볼은 빠르게는 시속 138km, 느리게는 119km가 나왔다. 시속 10km 정도 차이가 나는 다른 투수들에 비해 구속의 차이가 크다. KIA 전력분석팀 박종하 과장은 조정훈이 결정구로 사용하는 빠른 포크볼은 마치 슬라이더처럼 날카롭게 떨어지기 때문에 알고도 치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양한 구질을 정확히 구사하는 투수로는 KIA 윤석민이 돋보였다. 그는 직구와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사진5), 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까지 던졌다. 박 과장은 체인지업만 해도 두 종류(체인지업과 서클 체인지업)를 던지고 모든 구질을 마음먹은 곳에 90% 이상 던지는 제구력까지 갖춘 보기 드문 투수라고 평가했다. 올해 국내에서 가장 빠른 시속 154km의 직구를 던졌던 한화 브래드 토마스(디트로이트 이적)는 최고 142km의 빠른 슬라이더와 포크볼을 던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헌재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