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 빠르잖아. 집중해.
5일(현지 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러스텐버그 인근의 올림피아파크 스타디움. 훈련을 시작한 지 40분가량 지나자 선수들의 호흡이 가빠졌다. 일부 선수는 예상보다 빠른 공의 속도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더 빨리 뛰어. 허정무 감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허 감독은 훈련 내내 선수들에게 한 박자 빨리 뛰라고 주문했다.
태극전사들이 2010년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공에 첫발을 디뎠다. 약속의 땅에 입성한 이들이 감격을 누릴 겨를도 없이 직행한 곳은 훈련장. 도착 첫날부터 강도 높은 현지 적응 훈련이 시작됐다.
고지 적응이 관건
이번 전지훈련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고지 적응이다. 한국은 해발 1753m에 이르는 요하네스버그의 사커시티에서 아르헨티나와 B조 2차전을 치른다. 해발 1250m의 러스텐버그에 훈련 캠프를 차린 건 이에 대한 대비책. 허 감독은 이번 전지훈련의 핵심은 선수들이 고지를 느끼게 하고, 고지에 강한 선수를 가리는 데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고지에서는 체력 저하가 가장 큰 문제다. 몸속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할 수 없기에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진다. 훈련이 끝난 뒤 박태하 코치는 확실히 선수들의 힘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누구보다 경기장에 있는 선수들이 가장 많이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비수 강민수(수원)는 처음에는 몰랐는데 30분쯤 지나니 땀이 많이 흐르고 평소보다 숨이 많이 찼다고 전했다.
고지에선 기압이 낮기 때문에 공의 속도도 빨라진다. 골키퍼 이운재(수원)는 공이 생각보다 빨라 슈팅을 막는 데 타이밍이 조금씩 늦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고지 적응 최소 3주 필요
하지만 이번 훈련은 엄밀히 말하면 고지 적응이라기보다는 경험에 가깝다. 성봉주 체육과학연구원 박사는 인체가 고지에 완전히 적응하기 위해선 최소 3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세 번 이상 훈련과 휴식을 반복해야 몸이 적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스텐버그의 고도(1250m)가 고지훈련의 효과를 얻기에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신동성 스포츠연구소 소장은 1600m 이상은 돼야 몸이 고지를 극복할 내성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번 전지훈련에서 고지 훈련의 효과를 전혀 찾을 수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일단 고지를 경험하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선수들이 본선에 맞춰 대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허 감독은 고지에 최적화된 체력은 코칭스태프가 만들어줄 수 없다. 우리는 단지 선수들에게 준비를 위한 정보와 경험을 제공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선수들에게 심리적인 자신감도 줄 수 있다. 김호곤 울산 현대 감독은 2004년 올림픽대표팀을 이끌고 해발 1200m의 이란 방문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다. 당시 대표팀은 경기에 앞서 중국 쿤밍(해발 1885m)에서 1주일간 고지 적응 훈련을 했다. 김 감독은 사실 선수들이 고지대에 적응하기엔 훈련 기간이 너무 짧았다. 하지만 자신감은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쿤밍 훈련이 끝난 뒤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보고 승리를 확신했다고 말했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