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전철로 40분 거리인 지바 마린스타디움. 23일 일본 프로야구 롯데 마린스 김태균(28)의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일본에 온 지 3주째. 그는 처음 사흘 동안은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는데 이젠 적응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처럼 여유로웠고 자신감이 넘쳤다. 지난해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거침없이 방망이를 휘두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일본 언론 보도의 오해와 진실
김태균은 5일 일본에 도착한 뒤 몇 번 놀랐다. 입국장을 빠져나오자마자 집요하게 달라붙는 취재진은 그의 귀고리와 선글라스, 옷차림까지 꼼꼼히 살피며 야쿠자 패션이라고 평가했다.
제가 치장하는 걸 좋아해요. 경기할 때를 제외하고는 패션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죠. 입국할 때도 평상시 모습대로 귀고리를 한 것뿐인데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니까 당황했죠.
개인훈련을 할 때도 그랬다. 김태균, 99번 배팅한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가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연습타를 세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취재진은 이를 하나하나 체크했다.
일본 언론은 아주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써요. 일본 여자친구를 사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운동하러 왔지 연애하러 온 게 아니다고 했더니 김태균, 금욕 선언이라는 기사가 나오더군요.(웃음)
김태균은 최근 평소 좋아하던 팀의 고참 이구치 다다히토(36)에게 예의를 갖추자는 생각에 인사를 하러 갔다. 이구치는 살을 빼는 게 좋겠다고 덕담을 했다. 이에 스포츠신문들은 앞 다퉈 이구치가 훈련교관이 돼 김태균이 진땀을 흘렸다고 전했다. 김태균의 몸무게가 평소보다 10kg이나 늘어 110kg이라며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역시 사실과는 차이가 있다. 김태균은 이구치에게 나는 원래 한국에서도 잘 못 뛰었다고 말한 게 확대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태균은 이런 것들이 외국인 선수에 대한 각별한 관심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생각과 다른 기사가 나오더라도 그 나라 문화로 생각하기로 했다.
저는 누가 시켜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전 이제껏 다이어트를 한 적이 없습니다.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제가 알아서 할 텐데 지금은 아니에요. 이달 말에 오키나와로 한 달 정도 전지훈련을 가면 저절로 살이 빠지겠죠. 지난해 시즌 초에는 108kg이었고 시즌 막판에는 116kg까지 나갔죠. 몸이 피곤하면 더 먹는 체질 탓이죠.
낯선 일본을 익히다
김태균은 기본적인 일본어 인사는 할 줄 안다. 하지만 자유롭게 대화하는 수준은 아니다. 부족한 부분은 그의 지바 부근 자택에서 함께 사는 통역 김영롱 씨(24)와 트레이너 손세진 씨(33)가 채워준다.
두 남자의 도움으로 편하게 지내요. 요리는 잘 못해서 근처 한국 음식점을 알아 뒀어요. 고기를 좋아해서 일본 야키니쿠 집도 단골집으로 만들었죠.
김태균의 하루 일과는 오전 개인 훈련이 전부다. 나머지 시간은 집에 머문다. 자칫 무료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해 그는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고 했다.
한국을 떠날 때 여행용 가방에 가장 먼저 챙긴 게 노트북과 게임기였어요. 야구와 축구 게임을 자주하죠. 특히 야구는 WBC 경기를 자주 하는데, 제가 승부사로 등장하더라고요. 게임이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목표는 신인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
김태균은 일본 진출을 놓고 고민했다. 9년간 통산 타율 0.310에 188홈런, 701타점. 국내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며 각종 기록을 늘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무대를 선택했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선택이 필요했어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도전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외국 무대에서 많은 것을 배우라는 선배들의 조언이 큰 힘이 됐죠.
김태균은 이달 30일부터 25일간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이 기간에 몸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릴 생각이다. 그의 올 시즌 목표는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다.
어떤 성적을 내겠다고 장담하긴 어려워요. 일본에선 모든 게 새롭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본 투수도 실투를 던지게 마련이고 그걸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죠.
김태균에게 야구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는 내 생각대로, 느낌대로 야구를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균은 올 시즌 어떤 장면을 꿈꾸고 있을까. 지난해 WBC 일본과의 아시아 라운드 1차전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만났을 때였어요. 볼카운트 3볼에서 직구를 예상하고 받아친 게 왼쪽 담장을 훌쩍 넘어갔죠. 그런 드라마를 다시 쓰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경기장을 나서자 5060명이 줄을 서 있었다. 김태균을 기다린 팬들이었다. 이들은 사인판과 야구공을 든 채 몇 시간을 기다렸다고 했다. 사인을 받은 이들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함께 사진을 찍기 전에 양해를 구하는 건 기본이었다.
황태훈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