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고무줄 줄다리기라고 했던가. 상대를 애태우기 위해선 뒤로 빼야 할 때도 있지만, 너무 빼다가 고무줄이 끊어지면 다시 잇기 어렵다. 상대를 붙잡겠다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고무줄의 팽팽함이 풀어진다. 지난 정부 때까지 남한은 다가갔고 북한은 달아났다. 달아나면서도 받을 것은 다 챙겼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돼 북한은 다가오는데, 남한은 시큰둥한 구도다. 달콤한 밀어 대신에 성전()과 선제타격같은 험악한 말도 오간다.
중국와 러시아도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기에, 6자회담에서 북한은 항상 5대 1로 몰렸다. 6자회담 구도에서는 핵을 폐기해야 체제보장과 경제적 대가를 받을 수 있으므로 챙길 것이 없었다. 북한은 그래서 6자회담은 피하고 5개국을 하나씩 상대하는 양자회담에 주력한다. 그러나 러시아로부터는 받아낼 것이 적고, 일본은 납북자 문제로 적대적이다.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중국 덕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6자회담 복귀만 종용할 뿐 속 시원한 양보가 없다. 북한의 손 벌리기는 한국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작년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때 내려온 북한 조문단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갔지만 그 뒤로 바뀐 것은 없다. 최근엔 정상회담을 하자, 해외공단 공동시찰을 하자, 개성과 금강산 관광문제를 논의하자, 심지어는 3통()문제를 논의할 군사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과거 남한 정부가 원했던 모든 통로를 열어놓았다. 최근에는 다급해졌는지 인도주의 차원에서 북한을 도우려는 NGO의 방북은 거의 무조건 허가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국방위원회는 자존심이 상한 듯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는 공갈을 빵빵 질러댄다.
요즘 북한의 대남공세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간다. 한쪽에서는 어떻게 하든 남한과 당국자 회담을 해보려고 안달복달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군부 쪽에서는 청와대를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어느 것이 북한의 진짜 모습일까. 인민의 먹을 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노동당과 강성대국 건설에 매진하는 혁명무력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북한이 놓았다 당겼다하는 고무줄에 일희일비 할 게 아니다. 사랑을 하려면 먼저 흉기를 내려놓아야 함을 깨우쳐주어야 한다.
이 정 훈 논설위원 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