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선호하는 스타일의 경기가 아니어서 처음에 많이 당황했어요. 하지만 (이)호석이 형이 스퍼트를 시작하면서 다른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많았습니다. 호석이 형을 잡으려고 다른 나라 선수들이 함께 나가는 사이에 제가 나갈 틈이 생겼습니다. 호석이 형 덕분에 신체적 접촉이 없이 저도 앞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정수(21단국대)는 초반부터 치고나가며 승부를 거는 스타일. 하지만 이날은 맨 꼴찌인 5위로 처졌다가 3바퀴를 남기고 2위로 올라섰고 마지막 바퀴에서 선배 이호석(24고양시청)을 0.054초 차로 제치고 1500m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
이정수가 평소와 전혀 다른 레이스에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고 정상에 올라선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체육과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이정수는 언제든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는 신체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정수의 서전트 점프는 63cm. 5060cm 사이인 동료 선수보다 높다. 반응시간도 0.24초로 남자 대표팀 중 2위. 그만큼 순발력이 돋보인다.
어떤 상황에서든 몸이 빠르게 반응할 수 있어 이정수는 레이스에서 먼저 치고 나가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특히 돌발 상황이 많은 쇼트트랙에서 순간적인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고 한발 먼저 움직임으로써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할 수 있다. 이날 마지막 곡선주로를 앞두고 이호석을 따라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171.2cm, 59.7kg의 이정수의 허벅지 둘레(좌 52.6cm, 우 52cm)는 대표팀에서 가장 작다. 허벅지 둘레는 파워를 낼 수 있는 기본 척도. 하지만 효율적인 파워에서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
30초 동안 최대의 힘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아 하체의 힘을 측정하는 윈게이트 테스트에서 발군이었다. 이정수는 최고 파워 717.72W(와트)로 이호석(736.16W)보다 약했다. 하지만 kg당 최고 파워는 12.02W로 이호석(11.85W)보다도 나은 대표팀 내 1위다. 일반적으로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전체 파워는 좋지만 효율성에서는 kg당 파워가 더 중요하다.
이정수는 윈게이트 테스트 피로지수가 34.49%로 역시 대표팀 내 1위. 피로지수는 순간적인 파워를 후반까지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으로 지수가 낮을수록 능력이 좋다는 뜻. 그만큼 순간적인 스퍼트를 하고 그 힘을 계속 유지하는 능력이 좋다. 이정수는 또 5140cc의 폐활량을 가져 대표팀에서 가장 높았다. 폐활량은 지구력의 한 척도. 14일 1500m에서도 우승한 배경이었다.
이정수의 허벅지 둘레의 차이는 0.6cm. 장딴지 차이는 0.1cm. 허벅지의 경우 다른 선수들은 1cm가 넘는 차이를 보이고 장딴지 둘레도 거의 1cm 차이를 보이는 것과 다르다. 그만큼 좌우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최규정 체육과학연구원 박사는 좌우가 고루 발달하면 힘을 내는 곳이 특정 지점으로 몰리지 않아 그만큼 효율적으로 힘을 쓴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첫 2관왕. 만능 스포츠맨의 자질을 갖춘 이정수였기에 가능했다.
양종구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