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봄. 뽀얀 피부에 웃는 모습이 수줍어 보이는 한 소년이 홀로 빙판을 지켰다. 고된 오후 훈련이 끝나고 친구들은 집으로 갔지만 소년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전력을 다해 빙판을 돌면서도 표정은 밝았다. 소년은 속으로 한 가지만 생각했다. 자면서도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년, 웃다
소년이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인 1995년. 유치원 때부터 취미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던 그는 빙판이 좋고 스피드가 좋아 초등학교 때부터 스케이트로 갈아 신었다. 그가 다닌 서울 리라초등학교는 스케이트의 명문. 거기서도 그는 금방 두각을 나타냈다.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을 병행하면서도 두 종목 모두 동년배 가운데 최고였다. 당시 그를 지도한 서태윤 전 리라초등학교 지도부장은 스케이팅에선 천재성을 타고 났다. 말수가 적지만 가르치는 걸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영리한 머리도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눈에 띈 부분은 그가 스케이트를 정말 즐겼다는 것. 하루는 스케이트를 탈 때마다 항상 싱글싱글 웃는 이유가 궁금해 물었더니 대답이 이랬다. 평소엔 많이 안 웃어요. 근데 스케이트를 타면 저절로 웃음이 나와요. 그냥 좋아요.
즐기면서 타서였을까. 연습량도 엄청났다. 아버지 이수용 씨(52)는 빙판에 있을 땐 힘든 걸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한번은 훈련 도중 발목에 멍이 시뻘겋게 들었는데 훈련이 끝나고서야 아프다고 하더군요.
세 번 울다
시련도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세 번 크게 울었다는 게 그의 얘기. 첫 번째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98년이다. 당시 외환위기로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어린 그가 상처를 많이 받았다. 가족들도 돈이 많이 드는 스케이트를 그만두라고 조심스럽게 권유했던 상황. 하지만 빙판을 떠날 순 없었다. 오히려 여기에 내 인생을 걸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가족도 그의 손을 들어 줬다.
두 번째 시련은 지난해 찾아왔다. 중학교 이후 쇼트트랙에 전념한 그는 2005년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 2개를 따내는 등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지난해 4월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며 충격을 받았다. 추월하는 재미에 매력을 느껴 쇼트트랙을 선택했죠. 자신감도 있었고 기대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선발전 탈락이 더 아팠어요.
목표를 상실한 그는 수개월을 방황했다. 말없이 혼자 여행을 떠나고 잘 안 마시던 술에도 입을 댔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스케이트에 대한 미련은 더욱 커졌다. 결국 다시 빙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발엔 쇼트트랙 스케이트 대신 스피드스케이팅 스케이트가 신겨 있었다. 그의 지구력을 눈여겨본 전명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의 권유로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종목 선수로 다시 한번 태극마크를 노리게 됐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환하고 나서 그는 세 번째로 울었다. 어떻게든 스케이트를 계속 타기 위해 고심 끝에 결정한 선택이었지만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누구보다 의지가 강한 그였지만 사람들은 조금 타다 그만둘 것이라고 손가락질했다. 그의 성공을 점친 사람도 드물었다. 원래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말수가 더욱 줄었다.
이때 그가 내린 결론은 훈련. 발이 부르트도록 빙판을 돌았다. 태릉선수촌 김철수 지원팀장은 빙판에 살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만큼 훈련을 열심히 했다. 주변에서 저러다 쓰러질 까 걱정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피겨 김연아에 비교할 만한 업적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을까.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해 7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환한 그는 3개월 만인 10월 대표 선발전을 통과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엔 출전하는 대회마다 신기록 행진. 특히 오랜 기간 꾸준한 연습 없인 완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빙판의 마라톤 스피드스케이팅 1만 m에선 처음 출전한 지난해 12월 14분1초64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보름 뒤 출전한 지난달 아시아선수권대회. 그 기록을 40초가량 앞당기며 13분21초4로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세 번째 대회에선 결국 일을 냈다. 24일 오전 캐나다 밴쿠버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펼쳐진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 m에서 12분58초55로 올림픽 기록까지 갈아 치우며 금메달을 땄다. 5000m 은메달에 이어 금메달까지 거머쥔 그는 일약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으로 거듭났다.
김관규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감독은 신체조건이나 지구력 등을 감안할 때 아시아에서 저런 선수가 나온 건 기적이라며 그는 하늘이 한국에 내린 축복이나 마찬가지라며 놀라워했다. 윤의중 대표팀 전 감독도 그의 우승은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 한국에서 김연아가 우승하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이다고 감격해했다.
그는 오랫동안 신지 않은 스피드스케이팅 부츠를 7개월 전 다시 꺼낼 때 나보다 한 뼘 이상 큰 선수들과 경쟁하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1만 m 레이스가 끝난 뒤 그의 양 옆엔 덩치 큰 서양 선수들이 자리 잡았다. 시상식 한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서 그는 환한 미소로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답례했다.
피겨의 불모지 한국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남자. 준비된 깜짝 스타 이승훈(21한국체대) 얘기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