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사형이 확정된 성폭행 범죄자 등 반인륜적 흉악범에 대해 신속하게 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안 원내대표는 1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 피의자 김길태 씨가 체포된 사실을 언급하며 사형이 확정된 자 중에 인간이기를 포기한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성폭행범이나 연쇄살인범은 선별해 신속히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또 그것이 정의와 법치주의에도 맞다고 말했다. 이어 형사소송법에는 사형집행 명령은 형 확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고 강제 규정돼 있다. 헌법재판소도 사형제도가 합헌이라고 일관되게 결정하고 있다며 사형이 법무부 장관에 의해 집행되도록 돼 있는데도 지난 12년간 단 한건도 집행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정부에 대해 사형집행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되는 이 발언을 놓고 정치권에선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당 사법제도개선특위 위원장인 이주영 의원은 성명을 내고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러도 감옥 가는 것만으로 그친다면 더한 흉악범이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며 법무부, 국방부 장관은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 59명 중 아동성폭력 범죄나 연쇄살인 등 극악범죄자에 대해 즉각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한 핵심관계자는 안 원내대표의 발언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며 이번 성폭행 살해 사건에는 성장과정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피의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사형집행 부분만 강조하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부산 여중생 살해 사건은 우리에게 감형 없는 종신형 등 성범죄자를 영구적으로 격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지만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건 지나친 감정적인 발언이라고 말했다. 사형제 폐지법안을 발의한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성폭력 범죄와 같은 흉악범죄를 사형제와 같은 형량 강화로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며 안 원내대표의 발언은 국민적 공분을 앞세운 또 하나의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법무부가 당장 사형집행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사형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유럽 국가들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형집행이 통상마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장인 이상혁 변호사(75)는 피해자의 목숨도 소중하지만 사형수들의 생명도 똑같이 존엄하며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장석 최창봉 surono@donga.com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