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19일 한나라당의 법원제도 개선방안을 강하게 비판했던 전날의 분위기와 달리 별다른 움직임 없이 차분함을 유지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 도중 기자들로부터 전날 성명 발표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지만 수고합니다라는 인사만 건넨 후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대법원이 직접 정면대응에 나선 만큼 일선 판사들도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자며 관망하는 기류였다.
판사들은 대체로 전날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이 직접 나서 현 여권을 겨냥해 일격을 가한 데 대해 할 말을 했다며 수긍하는 분위기다. 법원 고위 관계자는 양형위원회를 대통령 산하에 두고 법관 인사까지 외부 인사가 좌지우지해서는 사법부의 독립이 지켜질 수 없다며 사법부와 언론은 전통적으로 (정치) 권력을 견제하는 유일한 장치인데 최근 정치권의 논의는 이를 흔드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법원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재반박한 데 대해서도 법원 내부에서는 과거 사법부 개혁 논의는 법원과 검찰, 변호사단체, 학계, 정치권 등이 고루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심사숙고하는 방식으로 논의돼왔다며 법원행정처 간부를 불러 몇 마디 물어본 뒤 며칠 만에 졸속으로 내놓은 게 의견 수렴이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법원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의 안 자체가 국회에서 통과될 개연성이 낮은 비현실적인 것인데도, 대법원이 성급하게 나서는 바람에 정치권과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양새가 된 것 같다는 견해도 있었다.
법원 안팎에서는 대법원과 여권이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는 데 대해 곪아서 터질 것이 터졌다는 시각이 많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대법원과 크고 작은 사안에서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왔기 때문. 지난해 8월 민일영 대법관 임명제청 과정에서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서로 다른 인사를 원하는 바람에 통상 2, 3일 걸리던 후보자 임명제청이 보름 이상 늦어진 것이 대표적 예다. 올해 초 외교통상부가 갑자기 부장판사급의 국제협력관 파견을 중단했을 때도 대법원은 사전에 아무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며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우리법연구회 문제나 법원노조의 전국공무원노조 가입 문제 등에 대법원이 미지근한 대응을 보였을 때도 정부 쪽에서는 이전의 정권이 임명한 이 대법원장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는 불평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두고 정부와 법원 사이의 소통 채널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판사 출신인 강훈, 이제호 변호사가 대통령법무비서관에 임명됐을 때도 법원행정처에서는 말만 판사 출신이지 우리와는 별로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전성철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