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명 비보이 댄스그룹 팀원들이 정신질환자로 위장해 병역을 면제받았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이 그룹 팀원들은 의사를 속이기 위해 한 달간 정신병동에 입원한 것은 물론 2년간 병원을 다니며 정신질환자 행세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정신질환자로 위장해 병원으로부터 처방전을 받은 비보이 댄스그룹 T팀의 팀장 황모 씨(30) 등 9명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이들은 모두 현역으로 입대해야 한다. 그러나 9명 가운데 6명은 공소시효가 이미 지나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달간 입원, 2년간 통원치료
비보이들의 정신질환자 위장은 치밀했다. 비보이 댄스그룹으로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군 복무 통지를 받고 고민하던 박모 씨(29)는 주변으로부터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신 질환자 흉내를 내면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박 씨는 인터넷에서 정신질환 병역면제 기준을 확인한 뒤 연기하기 쉬운 질환을 검색했다. 정신분열증을 택한 박 씨는 서울의 한 국립병원 정신과에 찾아가 헛것이 보이고 환청이 들린다며 환자인 척했다. 의사는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박 씨를 보며 정신분열증 판정을 내렸다. 박 씨는 면제 기준을 맞추기 위해 한 달간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퇴원 후에는 14주에 한 번씩 병원을 다니며 꾸준히 약도 받아왔다. 이런 행동을 2년 가까이 계속한 박 씨는 마침내 병무청에 관련서류를 제출하고 면제 등급인 5급 판정을 받았다.
박 씨의 성공사례를 본 팀원들은 같은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인터넷을 통해 특정 정신질환 증세를 공부한 뒤 누가 자꾸 내 머리를 자르려고 한다, 뒤에서 가위질 소리가 난다는 식으로 미리 문구를 준비해 진료를 받을 때마다 연기를 했다. 병원을 철저히 속이기 위해 가족도 동원했다. 어떤 팀원은 가족까지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였다. 이런 방법으로 정신분열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경계선지능 및 정신지체 판정을 받았다.
완전범죄가 될 것 같았던 이들의 범행은 이중행각 때문에 들통이 났다. 경찰은 한 비보이 댄스그룹의 팀원 17명 가운데 9명이 정신질환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정신병 치료를 받았다던 9명은 2001, 2002, 2007년 출국해 국제대회에 참석한 사실이 확인됐다. 두 명은 운전면허 갱신 때 제출한 서류에 정신 병력이 없다고 표기한 것을 찾아냈다.
정신병 위장 면제 최초 사례
경찰 관계자는 다른 스포츠가 국제대회에서 수상하면 병역 혜택을 주는 데 반해 비보이는 아직 그런 특례가 없어 법을 어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T팀은 비보이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온탑오브더월드 다이너마이트 그랑프리 등 유수 국제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수차례 우승한 경력이 있는 국내 대표 비보이 댄스그룹. 유명 TV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해 일반인들에게도 인지도가 높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 역시 일종의 스포츠 팀으로 10대 후반에서 30대까지 왕성히 활동하는데 그 사이 군대를 가면 팀 활동에 차질을 빚는 데 따른 부담이 컸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번 범죄는 정신 병력을 위장해 병역 면제를 받은 첫 사례라며 일반적인 병역 면제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여 계속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 이번 수사 중 일부 비보이 그룹 팀원 여러 명이 같은 병력으로 면제를 받은 사례가 나와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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