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 도로에 면한 학교는 높은 방음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정문에는 오전부터 경찰이 짝을 이뤄 순찰에 나섰지만 후문 쪽은 조용했다. 오후 4시 반 하교하는 3학년 김모 군(9)에게 혼자 다니면 위험하지 않느냐고 묻자 괜찮아요. 엄마도 걱정 안 해요라며 웃었다.
사흘 전인 7일 이 학교에 있던 초등학생 A 양(8)이 대낮에 납치돼 성폭행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10일 직접 서울시내의 5개 초등학교를 둘러봤지만 치안 대책은 여전히 허술했다. 외부인이 학교 건물 안에 들어가 학생들과 이야기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학부모들은 흉악한 아동성폭력 사건이 어떻게 매년 되풀이될 수 있느냐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초등학교들 거의 무방비 상태
이날 오후 3시에 찾아간 서울 동대문구 J초등학교는 한산했다. 학생들은 하교 후 몇 명이 남아 운동장에서 놀거나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은 물론 건물 3층까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순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학생은 평소 어른들도 자유롭게 학교 안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날 학교에 머문 30분 동안 경비 인력은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간 서울 마포구 A초등학교 역시 동네 주민들이 아무런 제지 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학교 담장 없애기 프로젝트 이후 담의 높이도 허리 높이까지 줄었다. 벤치 아래에는 맥주병과 소주병이 굴러다녔다. 운동장에서 하교하는 손자를 기다리던 김모 씨(53여)는 주변에 재개발 지역이 많아 걱정이라며 학교에 들어오는 게 너무 쉽다고 말했다. 이날 동아일보 취재진은 이들 학교 외에 서울 송파구의 J초등학교와 종로구의 H초등학교 등도 둘러봤지만 단 한 번도 제지를 받지 않고 건물 안까지 드나들 수 있었다. 서울 지역 초중고교 대부분은 학교를 주민이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도록 개방해 운영하고 있다.
아동성폭력 전문상담기관인 서울 해바라기아동센터의 우경희 부소장은 그동안 성폭력 예방상담을 할 때 학생들에게 집과 학교는 안전하다는 가정하에 등하굣길 안전수칙만 강조했는데 이번 기회에 학교 내 성폭력 안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발만 구르는 학부모
학부모들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특히 안전지대로 여겼던 학교에서 여학생이 납치돼 성폭행당하자 이제 성범죄에서 안전한 곳이 없다는 반응이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사는 주부 최모 씨(38여)는 그동안 학교는 안전하다고 생각해 등교한 다음에는 안심했는데 이제 그것도 힘들게 됐다며 아이 셋을 집에 가둬놓고 키워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사건 자체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유치원생 딸을 키우는 직장인 오영석 씨(37)는 (사고 당시) 선생님과 학생들이 있었을 텐데 여자 어린이를 학교에서 끌고 가는 것을 몰랐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학교 측도 사건 이후 답답해하긴 마찬가지다. 송파구 J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누구나 학교를 드나들 수 있어 결국 이런 일이 터졌다며 학생들에게 아침부터 유괴 예방 교육을 하긴 했지만 뚜렷한 방법이 없어 큰일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박재명 장관석 jmpark@donga.com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