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월드컵 우승은 경기 내용보다는 결과에 치중하는 실리 축구가 대세였던 세계 축구계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현지에서 경기를 지켜본 차범근 SBS 해설위원은 스페인이야말로 세계 축구의 발전 모델이라고 극찬했다. 스페인의 우승은 토털 사커의 원조이지만 선 수비 후 역습을 노리는 실리 축구로 후퇴한 네덜란드를 꺾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역대 최고의 토털 사커
한준희 KBS 해설위원 등 전문가들은 스페인이 역사상 가장 토털 사커에 가까운 플레이를 한다고 평가했다. 스페인은 최전방부터 강력한 압박을 한다. 다비드 비야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등 공격수들은 볼을 놓치는 순간 벌 떼같이 달려들어 다시 볼을 빼앗는다. 볼을 획득하면 중원사령관 사비를 축으로 한 미드필드진과 공격라인, 수비라인이 정교한 패스를 주고받으며 볼 점유율을 높인다. 수비수들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선다. 스페인이 이런 축구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하기 위한 강철 체력을 갖췄으면서도 주전들이 세계에서 기량이 가장 높은 선수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등 세계적인 팀의 주전이 베스트 11의 주축이다.
환상 패스의 미학
스페인 토털 사커의 핵심은 정교한 패스. 갈수록 거세지는 강한 압박과 수비진의 교묘한 반칙을 뚫는 스페인 선수들의 플레이는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짧은 패스. 공격진과 미드필드, 수비라인 모두 패스가 물 흐르듯 이뤄진다는 점에서 축구 전문가들은 혀를 내두른다. 패스의 마술사로 불리는 사비와 이니에스타를 비롯해 공격수 비야, 수비수 카를레스 푸욜과 헤라르드 피케 등이 모두 세밀한 패스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누가 공격수이고 수비수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른 플레이다.
패스는 타이밍과 속도가 중요하다. 동료와 호흡이 맞지 않으면 끊어진다. 패스 속도가 느리면 차단당한다. 스페인 축구는 패스로 시작해 패스로 끝난다. 현대 축구의 흐름이 이젠 이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네덜란드 밖의 네덜란드
스페인의 빠른 패스와 벌 떼 공격의 기원은 1970년대 네덜란드로 올라간다. 전설의 리뉘스 미헬스 감독이 창시했고 요한 크라위프가 꽃을 피운 토털 사커. 크라위프는 1988년부터 1996년까지 바르셀로나를 지도하며 스페인에 토털 사커를 전수했다. 크라위프의 수제자는 바르셀로나의 주장이었던 호세프 과르디올라 현 감독. 과르디올라는 토털 사커로 리그 2연패를 하는 등 바르셀로나를 최강으로 이끌었다.
비센테 델보스케 스페인 감독은 개인 능력은 팀워크 속에서 극대화된다며 주전 11명 중 7명을 바르셀로나 선수로 구성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이 스페인 속에 네덜란드 토털 사커가 녹아 있다고 분석한 이유다.
양종구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