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앞 센 강변의 보도. 갑자기 거센 소나기가 쏟아지는데 6, 7세로 보이는 집시 여자아이 2명이 백인 관광객들의 옆을 따라 걸으며 구걸을 하고 있었다. 성과가 없이 돌아서는 이들에게 기자가 나이가 몇 살이냐 어디서 자느냐고 물으니 퉁명스럽게 짧게 뭐라고 대꾸한 뒤 다른 관광객을 향해 다가갔다.
최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내무부가 집시촌을 강제 소개하고 불법 체류하는 집시들을 본국으로 추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유럽 각국에서 집시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집시들이 북유럽으로까지 몰려가는 양상을 보이자 핀란드 정부가 사실상 집시를 겨냥한 구걸금지법을 추진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정부도 불법 이민자들을 엄단할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2008년 스위스 제네바 칸톤()은 집시의 구걸행위를 금지한 정책을 추진하다가 인권단체의 반발로 포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집시의 퇴출을 겨냥한 각종 정책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럽에서 집시는 비위생적 생활을 하며 구걸 또는 소매치기 같은 범죄로 연명해가는 대책 없는 골칫덩어리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전체 집시 인구는 대략 3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파리 외곽에 1만5000명, 이탈리아 로마 1만 명, 밀라노 6000명 등 유명 관광도시 주변에 모여드는 양상이다. 거주지는 대도시 교외의 캠프촌, 캠핑차나 공터의 천막 등으로 다양하다. 유럽 언론들은 집시가 21세기 들어 서유럽에 대거 진출한 것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유럽연합(EU)에 가입(2007)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본다. EU 내에서 규제 없는 자유로운 이동이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유럽 언론들은 각국 정부가 집시 문제에 갈수록 강경해지는 것은 이들이 과거처럼 단순히 소매치기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데 그치지 않고 소외된 빈민계층과 결합해 폭력성을 띤 반사회 세력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 최근 발생한 프랑스 그르노블 소요사태의 발단이 된 카지노 강도사건의 용의자를 비롯해 방화와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 가운데 집시가 적지 않았다. 이런 배경과 함께 집시가 많은 프랑스(50만 명), 독일(21만 명), 이탈리아(15만 명)에서 불법 이민에 적대적인 우파 정당이 집권하고 있다는 점도 집시의 퇴출과 방랑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도 무관치 않다. AFP 통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 각국이 높은 실업률과 재정 위기에 시달리자 이민 규제와 불법 이민자 적발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게르만 민족주의자였던 히틀러에게 최소 100만 명이 학살당하기도 한 집시, 그들의 정처 없는 방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종훈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