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최근 동아일보 등과의 인터뷰에서 조현오 경찰청장의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관련 발언에 대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이 차명으로 관리하던 계좌들도 사실은 노 전 대통령 쪽으로 흘러들어간 자금이니까 차명계좌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부장의 폭탄발언으로 조 청장의 명예훼손 사건은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차명계좌의 진실 쪽으로 무게중심이 급격하게 쏠리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에 관한 이 전 부장의 발언은 10억 뇌물수수의 새로운 정황 증거를 담고 있다. 그는 박연차 씨가 노 전 대통령 부부와 청와대 사저에서 만찬을 한 일이 있는데 권 여사가 계속 아들이 미국에서 돈이 없어 월세 산다고 말해 돈 달라는 얘기로 알았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박 씨는 권 여사가 집 사는데 한 10억 원 든다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제가 해드리겠습니다라고 수사 과정에서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차명계좌가 권 여사와 관련됐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정말 여러 사람을 살렸다면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로 수사를 덮는 바람에 정치인 비리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검찰은 조 청장의 차명계좌 발언 관련 명예훼손 고발 사건을 처리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유무만 수사할 일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 사망으로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게이트 관련 비리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를 지금이라도 재개해야 한다.
이 전 부장은 김태호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나가지 않은 데 대해 나가서 있는 대로 이야기할 생각이었는데 여권이고 야권이고 할 것 없이 다들 나오지 말라고 설득해 나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여야가 겉으로는 박연차 게이트와 노무현 차명계좌에 관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떠들었지만 뒤로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는 걸 가로 막았음을 보여주는 증언이다.
그러고도 여야는 증인 불출석을 문제 삼아 이 부장을 고발하겠다고 큰 소리쳤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국민 기만이 아닐 수 없다. 이 전 부장은 증인 출석을 막은 정치인들의 면면과 구체적 정황을 당당히 공개하기 바란다. 노 전 대통령은 사망해 공소권이 없지만 가족과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얼마든지 재개할 수 있다. 여야가 떳떳하다면 이번 기회에 국민의 알 권리와 진실규명을 위해 특별검사법을 만들어 봉인된 비밀을 풀어야 한다. 냄새가 풀풀 나는 태산을 옆에 놓고 쥐 잡는 수사만 하고 있을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