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7월 한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될 경우 일본으로부터 수입되는 100대 품목 중 16개 품목이 EU산으로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올해 대일 무역 적자가 350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 가운데 한-EU FTA가 만성적인 대일 무역 적자 해소에 물꼬를 틀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가격 절감효과 크다
2일 관세청과 무역협회에 따르면 전체 대일() 수입의 53.6%를 차지하는 대일 수입 100대 품목 중 대EU 수입 100대 품목과 중복되는 품목은 총 27개였다. 이 중 현재도 관세가 없는 11개 품목을 제외하면 16개 품목이 한-EU FTA로 인한 관세 철폐로 수입처 교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 통관 시 사용되는 국제품목 분류기준(HS코드) 10단위로 분석된 이들 품목은 대부분 전기전자, 기계, 화학, 자동차 관련 품목으로 올해 19월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이들 16개 품목의 총수입액은 34억8750만2000달러(약 3조9060억224만 원)에 이른다. 반면 EU로부터 수입된 16개 품목의 총수입액은 25억5717만8000달러에 그쳤다.
하지만 한-EU FTA가 발효되면 16개 품목 중 8개 품목은 관세가 즉시 사라지고 나머지 8개 품목도 35년 내에 관세가 철폐돼 상황이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9월까지 16개 품목을 EU에서 수입하면서 업체들이 관세로 지급한 돈은 총 2235억2302만 원 정도인데 한-EU FTA가 발효되면 수입업체들은 이 관세를 더는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일본산 물품을 수입하면서 9월까지 지불된 관세 총액 3017억7369만 원은 지금처럼 계속 지불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실제 수입업체 10곳 중 4곳은 수입선 전환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9월 한국무역협회가 EU와의 교역업체 337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사의 38.8%가 EU로부터의 수입 관세가 철폐될 경우 수입처를 현재의 일본, 미국, 중국 등에서 EU로 전환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한 수입업체 관계자는 거래사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장 수입처를 교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고정 비용 중 관세가 차지하는 비중과 타이트한 수익 구조를 생각하면 관세 철폐에 따른 가격 절감 효과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 기술이전 요구 가능
EU와의 FTA로 관세가 철폐되면 부품 소재 등에서 지나친 대일 수입 의존에 따른 부작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올해 상반기 부품 소재 부문의 대일 무역적자 규모는 120억 달러로 전체 대일 무역적자의 66%에 달한다. 1980년 이후 우리나라 수출이 1% 증가하면 대일 수입이 0.96% 증가하는 구조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대일 무역 의존도는 만성적이다. 특히 일본은 그동안 기계설비나 부품만 꾸준히 팔아 왔을 뿐 정작 기술이전에는 극도로 인색해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관세 철폐로 인한 가격 경쟁력을 등에 업은 EU산 제품의 거센 반격이 시작될 경우 우리나라 수입업체들이 일본 업체와 기술이전 등을 조건으로 내세운 전략적 협상을 할 여지가 커진다.
또 EU시장에 완제품을 수출할 때 FTA 당사자인 두 국가 외의 외국산 부품이 전체 구성품의 50%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역내산 부가가치 기준도 일본산 부품의 입지를 좁힐 수 있다. 유럽을 수출 주력 시장으로 삼고 있는 업체들이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일본산 부품을 EU산 부품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혜진 hye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