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랑스 양국 정상이 프랑스국립도서관(BNF)이 갖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를 5년 단위로 갱신해 사실상 영구 대여하기로 합의한 것에 대한 BNF의 조직적 반발이 시작됐다. 이 흐름은 문화계 전반으로 확대될 소지를 배제할 수 없어 향후 협상과정에 빨간불이 켜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BNF의 사서 등 관계자 11명이 18일 외규장각 의궤 대여 합의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지지세력 확보에 나선 것에 대해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BNF는 협상과정에서도 상호등가 원칙에 어긋나게 한국에 책을 대여하는 것에 대해 사르코지의 전용기를 막겠다며 강경한 반대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박흥신 주프랑스 대사와 폴 장오르티즈 프랑스 외교부 아주국장의 정부 간 협상을 이르면 22일 시작해 최대한 빨리 타결할 방침이다. 논란이 커지기 전에 속전속결로 정상 간 합의를 구체화하고 대여 절차를 마무리 짓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한국 중앙박물관과 BNF가 벌일 실무협상은 의궤의 운반과 보관 등 기술적 부분에 한정함으로써 BNF가 정부협상의 틀을 흔들 여지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약속에도 의궤 반환이 이뤄지지 않은 건 BNF 사서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당시는 정권 말기인 미테랑 대통령의 힘이 크게 빠진 상태로 의궤를 보관하고 있는 BNF 책임자들의 반환 거부 의사는 매우 거셌다. 당시에는 이 문제가 공론화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BNF가 반대세력을 규합해 단체행동에 나설 뜻까지 보여 사회적 쟁점이 될 여지가 있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18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문화재 유출금지 원칙을 교묘히 우회해 무제한 대여 형식으로 사실상 반환한 것이고 도서가 다시는 BNF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신중하지 못한 처신을 했다고 비난했다.
게다가 사르코지 대통령은 내년에 본격적인 대선 준비 체제에 돌입한다. 양국 간 실무협상이 BNF의 강력한 반대와 물리적 저항으로 차질을 빚고 반대 여론까지 강하게 불거질 경우 사르코지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합의의 강제이행을 밀어붙일 수 있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동병상련의 처지인 루브르, 기메, 베르사유 국립박물관 등이 BNF와 연계해 집단행동이나 연대 파업에 나서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박 대사는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힘이 있을 때, 또 BNF의 반발이 조직화되기 전에 빨리 절차를 마무리하자는 게 양국의 일치된 생각이라며 하루 빨리 한국으로 의궤를 가져가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종훈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