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장기독재를 종식시킨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의 불길이 이웃 이집트로 번졌다. 30년동안 집권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부통령을 새로 임명하고 총리를 교체했으나 정권 퇴진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예멘과 알제리 요르단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다. 1989년 동유럽의 민주화 도미노가 아랍권에서 재연될 듯한 분위기다.
1인 권력자의 장기집권은 여론을 억압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철권통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무바라크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반대 세력을 힘으로 억누르며 권력을 유지했다. 그는 9월 대선에서 6선에 도전하거나 차남에게 권력을 넘길 준비를 하다 민심의 역풍을 만났다. 때를 기다리던 이집트 국민은 튀니지 혁명에 힘을 얻어 거리로 뛰쳐나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독재에 대한 저항을 촉발시키고 시위대를 불러 모은 것도 닮은꼴이다. 이집트 정부는 트위터 페이스북 차단에 이어 인터넷 서비스까지 중단했지만 국민의 분노가 확산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무바라크가 수십 년간 쌓인 민주화 열망을 잠재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구상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대적할 수 있는 체제는 남아 있지 않다. 자유민주주의는 군주제 귀족정치 신권정치 파시즘과 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전체주의를 타파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정치제제로 수용됐다. 다만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였던 아랍 세계에서도 민주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는 아랍세계의 맹주인 이집트의 위상을 고려해 그동안 무바라크를 지지했다. 미국은 매년 13억 달러의 군사지원과 20억 달러의 경제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 국민의 저항이 강렬해지자 미국도 바뀌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무바라크에게 직접 정치개혁을 촉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집트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준비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국제사회가 무바라크에게 무력사용 자제를 촉구하면서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도록 권고할 필요가 있다.
아랍권의 혼란은 우리 경제와 국민의 안전에도 위협이 된다. 이미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4.3%나 급등했다. 이집트 사태가 악화되고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장기집권국가로 확산되면 충격은 더욱 커진다. 정부는 이집트 관광도 당분간 자제시키고 교민 안전, 현지 진출 기업 보호, 원유 수급에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